가노 다쿠미씨『안중근의사 日에 알리는 것이 사명』

  • 입력 1999년 3월 9일 19시 38분


“유감스럽게도 일본에는 안중근(安重根)같은 훌륭한 인물이 없었다.”

안중근의사가 죽는 순간까지 지니고 있었다는 가족사진 원본을 8일 공개한 일본의 가노 다쿠미(鹿野琢見·80)변호사는 “안중근의 인간성과 사상을 알수록 머리가 숙여진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안중근을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일본 에도막부 말기 많은 인재를 길러낸 선각자) 정도의 애국자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요시다는 일본만 생각했으나 안중근은 보편적인 평화주의와 인류애를 지닌 인물이었다.”

가노변호사가 처음 안의사를 알게 된 것은 10대 초반. 그의 이모부인 지바 도시치(千葉十七)는 안의사가 중국 뤼순(旅順)감옥에 있을 때 감시헌병으로 지켜보다가 감동을 받고 형장으로 끌려가기 직전의 안의사에게 부탁해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이란 안의사 친필을 받은 사람. 지바는 어린 조카들에게 “안중근은 정말 위대했으며 조선이 망하지만 않았으면 총리가 될 만한 분이었다”고 말했다.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무섭기만 했다. 당시 일본에서 안중근은 영웅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죽인 흉한(兇漢)으로만 알려졌다.”

가노변호사는 60년대 최서면(崔書勉)선생 등 재일 한국인들과 알게 되면서 안의사와 다시 인연을 맺게 됐다. 그는 이종사촌이 보관해온 안의사 친필의 존재를 61년 한국과 일본에 알렸다. 78년에는 이종사촌을 설득해 이 친필을 한국으로 보냈다. 특히 82년 학계 재계인사 등 10여명과 ‘안중근 연구회’를 결성한 뒤 중국 일본에서 국제회의와 강연 등을 통해 본격적으로 ‘안중근 알리기’에 나섰다.

“안중근을 일본에 알리는 것이 남은 삶의 마지막 사명이라고 생각한다”고 그는 말했다.

〈도쿄〓권순활특파원〉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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