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낙연/印尼혼돈 딜레마

  • 입력 1998년 11월 15일 19시 52분


인도네시아가 다시 심각해졌다. 최고 입법기구 국민협의회(MPR)의 정치개혁입법에 저항하는 학생과 시민들에게 군부가 발포해 엄청난 사상자를 내고 있다. 수하르토를 32년간의 권좌에서 몰아낸 지난 5월 ‘자카르타의 봄’ 이래 최악의 유혈사태다. 쉽게 해결될 기미도 없다. 인도네시아는 왜 신음하는가. 그 저변에는 개혁의 어려움이 깔려 있다. 한국도 겪어온 일이다.

▼MPR의 개혁입법은 군부의 정치개입을 점진적으로 줄이도록 했다. 그러나 시위대는 군부의 정치개입을 철저히 금지하라고 요구한다. 수하르토 추종자들이 장악한 MPR가 기득권 유지를 꾀하고 있다는 것이 시위대의 시각이다. 개혁입법은 수하르토 일가의 축재혐의도 조사토록 했다. 그러나 검찰 수뇌부도 수하르토 충성파라고 시위대는 믿고 있다. 수하르토 후계자 하비비대통령의 점진개혁이 도전에 직면한 것이다.

▼혼돈의 뿌리는 더 깊다. 수하르토 치하의 경제성장은 민주화 욕구를 부풀렸으나 후계체제는 그것을 수용할 태세를 갖추지 못했다. 야당이 강력한 것도 아니다. 내년 5∼6월 총선거에 나설 정당만도 1백개 가깝다. 내년 12월 대통령선거의 야당후보로는 인도네시아민주당(PDI) 메가와티, 국민신탁당(PAN) 라이스가 유력하나 이들의 연대는 불투명하다. 노선 선택에서도 고민하고 있다.

▼수하르토 비판의 선봉장이었던 라이스마저 노선의 고민을 이렇게 말한다. “민주화를 단숨에 진척시키려면 전국적 가두시위가 다시 필요할지도 모른다. 지지자들도 그것을 원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루피아화(貨)가 또 폭락할 위험성이 있다. 그러면 인도네시아 경제는 더욱 침몰하고 국민은 한층 고통받는다.” 인도네시아와 야당의 딜레마가 여기에 있다.

이낙연<논설위원〉naky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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