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를 장악하라』…한국벤처기업 美진출 붐

입력 1998-05-16 18:51수정 2009-09-25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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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해안 샌프란시스코 남단에서 새너제이까지 남북으로 길게 뻗은 실리콘밸리. 저마다 첨단 기술과 아이디어를 앞세운 수많은 벤처기업이 몰려 있는 ‘하이테크의 메카’. 이곳 실리콘밸리에 최근 한국 벤처기업들이 잇따라 입성, 테크놀러지를 무기로 세계 제패를 꿈꾸고 있다.

현재 실리콘밸리에 진출해 있는 한국계 기업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합쳐 30여개. 올해중에도 20개 이상이 진출할 전망.

12일 오후 새너제이 외곽에 자리잡은 새롬기술 미국사무소. 10명 남짓한 직원들이 미국 시장에 맞는 화상회의 소프트웨어 제품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새롬기술은 지난해 1백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며 국내 통신용 소프트웨어 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유망 벤처기업.

이 회사 안현덕(安賢悳·34)부장은 96년 7월 미국 시장 공략을 위한 선발대로 혈혈단신 태평양을 건넜다. 그의 미국행은 국내 중소벤처기업으로선 처음이었다. 지난해말 본사에서 7명의 엔지니어가 지원될 때까지 1년간 혼자 시장 분석과 인적 네트워크 구성에 비지땀을 쏟았다.

“미국 시장의 규모는 국내의 10배가 넘습니다. 이곳에서 10%만 차지해도 국내 시장 전체와 맞먹는다는 얘기죠.”

새롬기술은 미국진출을 위해 모두 1백20만달러를 투자했다.

지난해까지는 매출이 ‘제로’였지만 올해에는 20만달러 이상을 목표로 삼고 있다.

지난달 24일 새너제이 샌타클래라에 문을 연 한국소프트웨어인큐베이터(KSI)는 미국 진출에 앞서 전열을 가다듬는 베이스캠프. 이곳에는 현재 디지털캐스트 아블렉스 넥스텔 등 국내 10개 벤처기업이 입주, 비상(飛翔)을 준비하고 있다. 정보통신부에서 20억원을 지원해 설립한 이곳에서 1년 동안 머물며 현지 적응 기간을 갖고 있는 것.

미국 생활 3주째인 아블렉스의 김정호씨는 “국내처럼 중소기업이 특별한 기술을 개발했다고 하면 ‘베낀 것 아니냐’든지 ‘외국에서 이미 시장성이 없다고 판단해 개발을 포기한 기술이 아니냐’는 식으로 우선 깎아내리고 보는 분위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고 말한다.

한국기업들의 진출 움직임이 활발해지자 얼마전엔 지사업무를 대행해주는 한국계 기업 드림USA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미국 진출이 장밋빛 미래로 바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실리콘밸리는 남보다 앞선 아이디어와 기술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정글의 법칙’으로 유명한 곳.

이 지역 벤처기업 가운데 부(富)와 성공의 상징인 미국 증시에 상장되는 케이스는 불과 5% 미만. 미국 경제가 호황을 누리면서 미국 시장을 놓고 각국의 내로라하는 벤처기업들이 몰려 경쟁은 더욱 치열하다.

국내 경제탓에 한국 벤처기업의 경우 본사에서 충분한 지원은 꿈도 못꾼다. 대부분 한국에서 받던 월급만 그대로 받으며 버티고 있는 실정. 새너제이의 경우 최근 건물 임대료가 1년새 40% 이상 오르는 등 생활고가 가중되고 있다.

그러나 이곳 벤처기업 관계자들은 “마케팅과 기획력은 미국에 비해 다소 처지지만 기술 하나만은 한국이 최고”라고 입을 모은다. 저마다 빛나는 내일을 위해 묵묵히 칼을 갈고 있다.

<새너제이=홍석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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