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8일 일본 방위청 회의실에서 열린 제4차 한일(韓日)국방정책 실무회의는 상당히 경직된 분위기속에 진행됐다.
이날 양국 회의의 핵심안건은 미일(美日) 신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이 자리에서 한국측은 역대 국방정책 실무회의에서 볼 수 없었던 단호한 입장을 일본측에 전달했다. 가이드라인의 주요 개념인 「일본 주변지역 유사시」라는 상황이 직접적으로 한반도 전쟁 발발을 상정한 것이었기 때문.
특히 가이드라인 40개 항목중 △자위대 함정이 공해상에서 기뢰를 제거하고 △유엔의 경제제재가 단행되면 공해상에서 외국선박을 불시검문하며 △자국민 수송을 위해 자위대 함정을 파견한다는 내용은 한국으로서는 민감할 수밖에 없는 사항이었다.
이는 한반도 유사시 일본 자위대가 한국 영해와 영공에 들어 올 빌미를 줄 가능성이 있어 필연적으로 주권침해 논쟁을 불러 일으킬 소지를 안고 있었던 탓이었다.
한국측은 회의에서 일본측에 「2C1A」라는 한국 입장을 반영해줄 것을 강도높게 주문했다.
당시 한국측이 천명한 「2C1A」는 한반도에 분쟁이 일어났을 때 일본 자위대의 한국 영공 영해로의 진입은 반드시 한국정부와 △협의하고(Consult) △동의를 받으며(Consent) △자문을 구해야 한다(Advised)는 것이었다.
이같은 정부 입장은 일본은 물론 미국측에도 외교와 군사채널을 통해 여러 차례 전달됐다. 커트 캠벨 미국방부 아태담당 부차관보가 지난 11일 가이드라인 최종보고서를 사전설명하기 위해 방한한 이유도 한국의 이같은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정부와 군당국은 이같은 원칙 천명에도 불구하고 미묘한 입장에 처해 있다. 막상 한반도에서 극한상황이 발생했을 때 정부가 이같은 입장만을 고집할 수 없는 상황이 빚어질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고 군사적 차원에서도 미군을 지원하는 자위대 역할에 대한 명확한 선을 긋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이 북한의 전면공격에 직면하면 일본의 미군에 대한 후방지원은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또 북한이 부산 울산 진해 등 주요 항구에 대량의 기뢰를 부설하면 전쟁수행에 여념이 없는 한미 연합군으로서는 일본 해상자위대에 기뢰제거 역할을 분담시킬 수밖에 없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
일본이 자국민을 구출하기 위해 한국에 대형 수송함 파견을 통보하고 수송함 보호를 명분으로 해상자위대 소속 군함의 영해 진입을 요청해 올 경우 이를 거절하기가 쉽지 않다는 문제도 있다. 사실 중국측이 가이드라인에 대해 완강한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과 달리 정부가 한국의 영공 영해로 한정해 일본자위대의 진입을 거부한 것도 이같은 딜레마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가이드라인 자체보다는 가이드라인 확정에 따라 향후 2년간 추진될 후속조치들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가이드라인이 「무엇을 할 것인가」하는 원칙만을 정했을 뿐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구체적인 문제가 이들 조치들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후속조치로는 미일 작전협력계획의 수립은 물론 자위대법과 물자 용역의 상호제공협정, 항만법 해안법 등 자위대 활동을 법적으로 보장할 60여개의 유사법제(有事法制)의 정비를 들 수 있다.
정부는 이들 후속조치가 구체화하는 가운데 전수(專守)방위를 규정한 일본 평화헌법 정신이 훼손되고 일본 군사대국화에 대한 우려가 사실로 드러나지 않을까 하는 점에 더욱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황유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