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鄧 영결식-화장 표정]영구행렬 도로변 수만명 추모

  • 입력 1997년 2월 24일 20시 22분


[북경〓특별취재반] 鄧小平(등소평)의 유해가 안치돼 있던 북경 301해방군병원과 화장장인 팔보산(八寶山)에 이르는 도로에는 24일 아침 일찍부터 수만명의 「엄선된」 추모객들로 북적댔다. 등의 유해가 301병원에서 나온 시간은 영결식이 끝난 직후인 오전9시34분경. 등의 유해는 해방군의장대 6명에 의해 노란색과 붉은색 꽃으로 장식된 흰색 영구차에 실렸다. 등의 유해를 실은 영구차는 팔보산에 도착할 때까지 차량 28대의 호위를 받았으며 길가에는 무장한 공안병력이 3m 간격으로 배치돼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301병원에서 팔보산 화장장에 이르는 2.5㎞ 거리의 도로에는 수만명의 북경시민들이 나와 중국개혁의 설계사였던 등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봤다. 도로변 아파트주민들도 창문을 열고 애도를 표시했다. 북경대학생들도 지난 84년 천안문광장에서 등소평이 참여한 가운데 열린 기념식때 내걸었던 「소평 안녕하십니까」(소평니호)라고 쓴 플래카드를 다시 들고 나와 눈길을 끌었다. 중국 공안당국은 이날 등의 유체가 팔보산으로 출발하기 훨씬 전부터 북경시내에서 301병원으로 향하는 도로를 전면봉쇄, 외국취재진과 허가받지 않은 일반인들이 등의 영구행렬에 가까이 접근하는 것을 막았다. 이날 등의 영구행렬을 지켜보기 위해 나왔던 추도객들은 북경의 각 직장과 정부기관에서 선별해 차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당국은 등의 유해를 화장할 때 앞서 화장된 다른 사람의 뼈가루와 섞이는 것을 막기 위해 일본에서 수입한 최신식 화장로를 새로 설치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했다. 한편 이날 등의 화장관련 소식은 중앙라디오를 통해서는 보도됐지만 국영중앙텔레비전(CCTV)에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현지에서는 과거 중국지도자의 장례식 등 추도모임에서 여러차례 돌발적인 소요사태가 촉발된 적이 있기 때문에 중국당국이 이 점을 극도로 조심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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