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소평 사망/북경 현지표정]「천안문 재평가」대자보

  • 입력 1997년 2월 21일 19시 56분


[윤희상기자] 중국 사회에서 거론하는 것조차 금기(禁忌)로 돼있는 「천안문사태」에 대한 재평가 요구가 생각보다 일찍 고개를 들고 있다. 중국 남부의 경제중심지 광주(廣州)시내 중심가에 천안문 유혈사태를 재론해야 한다는 대자보가 鄧小平(등소평)사망 이튿날인 20일 나붙음으로써 일파만파의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89년6월 천안문광장에서 민주화 요구시위를 벌이던 수만명의 학생과 시민에게 인민해방군이 무차별 발포, 추정사망자 3천7백명과 부상자 1만명의 참극에 대한 시시비비 거론은 중국에선 금기중의 금기. 세계를 경악시킨 유혈사태 직후 수많은 사람들이 외국으로 망명했고 체포돼 복역중인 사람도 많다. 천안문사태 재평가를 요구하는 대자보가 등소평이 사망하자마자 등장한 것은 이 문제가 향후 중국 권력구조 향방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시사해 준다. 중국의 중앙텔레비전(CCTV)이 올해 초 방영한 다큐멘터리 「등소평」은 사태진압 후 열린 공산당 정치회의에서 등이 『이 사태는 청년 학생들이 나라를 서양식으로 끌고 가려고 저지른 일』이라고 단언한 것으로 전한 바 있다. 천안문 유혈진압은 등이 최종 재가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당시 온건대응을 주장한 趙紫陽(조자양)당총서기는 이때문에 실각했다. 이같은 배경에서 천안문사태는 등소평의 최대과오로 평가돼 왔다. 문제는 이 사안이 사망한 등소평에 그치지 않고 현재의 집권층과 깊숙이 연결돼 있다는 사실. 일의 전개방향에 따라서는 가히 「천하대란(天下大亂)」의 뇌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상해시장 시절 시위사태를 맞아 유연하게 대처함으로써 참극을 피한 江澤民(강택민)당총서기도 만약 천안문사태를 재론할 경우 자신을 현위치로 끌어올려 준 등소평을 비판해야만 한다. 유혈사태의 원흉으로 지목되고 있어 인기가 급락한 李鵬(이붕)총리만의 고민은 아니라는 것이다. 대자보가 나붙은 광동성의 광주는 중국에서 가장 소득수준이 높고 외부세계와 가까운데다 의식조차 자유주의적 분위기가 높은 곳. 광동성은 이미 중앙정부에 대한 세수(稅收)납부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기도 하다. 과연 이같은 천안문사태 재평가요구 대자보가 이어지고 또다른 시위사태라도 벌어지는 날이면 중국은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될 것임에 틀림없다. 일부 중국 전문가들은 『앞으로 상황이 진전되면 오히려 군부 일각에서 「인민의 가슴에 총부리를 대게 된 경위를 밝혀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수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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