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함께 뉴욕 속 이야기로 떠나는 짧은 여행. 기사에 담지 못한 뉴욕의 순간을 전해드립니다.
이 순간의 음악: Bridge Over Troubled Water - Simon & Garfunkel (Live at Central Park, 1981/9/19)
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뉴욕에 살면서 자주 보게 되는 풍경 중 하나는 아이를 업고 일하는 엄마들의 모습입니다.
대부분 지하철 안을 걸으며 초콜렛을 팔거나 거리 모퉁이에서 컵에 담긴 과일 등을 파는 남미 엄마들이 그렇습니다. 어떤 날은 아침에 나갈 때 본 엄마가 저녁 때까지 아이를 업은 모습 그대로 있기도 합니다.
‘하루 종일 저렇게 업고 있으면 나이들어 고생하는데….’ 하는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언젠가는 지하철이 토악질하듯 수백명의 사람을 쏟아내는, 발 디딜 틈도 없는 플랫폼에서 초콜렛을 팔다말고 아기를 안은 채 수유 중인 엄마를 봤습니다. 어떤 여자도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유독 비위생적인 뉴욕의 지하철역 의자에서 그렇게 있고 싶진 않을 겁니다.
그래도 엄마니까 그 무게를 견디며 살아나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오래 전 본 수십 년 전 우리나라 시장 풍경을 찍은 사진 속에서 아이를 업은 채 물건을 팔고 있던 우리나라 어머니들의 모습과 닮아 있다는 생각도 했고요. 이 세상에 엄마가 짊어진 무게를 달 수 있는 저울이 있다면 그 무게는 얼마일까 하는 엉뚱한 질문을 가져보기도 합니다.
엄마의 무게는 아이를 업고 다니는 엄마에게만 있는 것 같진 않습니다. 뉴욕에서는 한국에 비해 훨씬 더 다양한 엄마들을 만나게 되는데, 가끔 이들 중 누구의 무게가 가장 무거울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매년 여름 세계 최대 규모로 열리는 뉴욕의 성소수자 퍼레이드 현장에서 만난 엄마와 아들. 아이가 크레파스로 적은 피켓에 ‘난 우리 엄마 두명을 사랑해요(I LOVE MY 2MOMS)’라고 적혀있다. 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미국이 전체적으로 그렇긴 하지만 특히 성소수자에 대해 진보적인 뉴욕에서는 아빠만 둘인가정, 혹은 엄마만 둘인 가정을 종종 보게 됩니다. 뉴욕은 대리모가 합법이기 때문에 동성 부부는 물론 이성 부부의 경우에도 굳이 자신의 몸을 쓰지 않고(?) 아이를 낳는 경우도 있습니다. (엄마가 건강 문제로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황일 수도 있고, 혹은 커리어 문제 때문일 수도 있고 사정은 다양합니다.)
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그런가 하면 입양이나 위탁을 통해 자녀를 맞은 집도 적지 않고, 이혼을 해서 혼자 아이를 키우며 엄마 아빠의 역할을 다하는 엄마나 아빠도 많습니다. 또 도무지 살아갈 방도가 없는 엄마들이 아이를 데리고 길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리며 하루를 보내는 모습도 흔한 풍경입니다. 어쨌든 분명한 건 뉴욕에는 한국보다 엄청나게 다양한 가정의 형태와 엄마의 모습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많은 경우 뉴욕 사람들은 이런 자신의 다양한 상황에 대해 특별히 숨기거나 언급을 피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마치 지난 휴가 때 다녀온 여행지에 대해 말하듯, 자신의 가족 구성이나 가정 상황에 대해 담담하게 얘기하는 모습을 봅니다. 뉴욕 사람들이 그럴 수 있는 건 내가 나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말해도 상대방이 나를 함부로 판단하거나 잣대를 들이대지 않을 것이라는 사회적 믿음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같은 상황일 때 한국은 두려움 없이 솔직할 수 있는 곳일까, 나는 편견없이 그런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일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봅니다.
뉴욕의 한 서점에 걸려있던 엄마와 아이를 주제로 한 일러스트레이션. 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다시 돌아가 엄마의 무게에 대해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엄마들 중에 누구의 무게가 가장 무거울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알 수 없었습니다. 이 세상엔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절대 알 수 없는 무게가 너무나도 많기 때문입니다.
하루종일 아이를 업고 걷는 삶, 아빠인 엄마의 삶, 엄마인 아빠의 삶, 아이를 앉고 길거리에 앉아 있는 삶, 누군가의 아이를 대신 품고 있는 삶…. ‘나는 그 모든 무게를 안다’고 누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다만, 각자의 무게를 짊어지고 나아가는 모든 엄마와 아이들이 서로의 힘이 되며 행복할 수 있기를 응원할 뿐입니다.
순간을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imsun@donga.com으로 보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