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세대, ‘가챠’ 기기 몰려들어
“인기 애니 캐릭터 굿즈 뽑아라”
롯데마트, 전국 112개 점포 설치
GS25-CU도 도입 확대 서둘러
10일 서울 중구 롯데마트 제타플렉스 서울역점 토이저러스 매장을 찾은 고객들이 가챠(뽑기) 기기를 이용하고 있다. 최근 대형마트부터 편의점까지 가챠 기기 도입을 늘리고 있다. 롯데마트 제공
서울 마포구 AK플라자 홍대점 4층 ‘가챠폰 스트리트’. 벽면을 따라 130여 대의 알록달록한 ‘가챠’(가차·캡슐토이) 기기가 늘어선 공간엔 뽑기를 돌리는 2030세대들로 북적였다. 인기 애니메이션 ‘개구리중사 케로로’ 기기 앞에선 원하는 굿즈를 얻을 때까지 연달아 기기를 돌리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추석 연휴 기간 매장을 찾은 대학생 이루다 씨(20)도 케로로 굿즈 4개를 보여주며 “캡슐을 열기 전까지의 긴장감과 원하는 굿즈가 나왔을 때의 ‘도파민’ 때문에 가챠를 멈출수 없다”며 웃었다.
1990년대 문방구 앞 추억의 놀이였던 ‘뽑기’가 ‘가챠’로 진화해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가챠는 캡슐 뽑기 손잡이를 돌릴 때 나는 일본어 의성어 ‘가챠가챠’에서 따온 말이다. 지난해부터 일부 유통업체들이 가챠존을 속속 도입한 데 이어, 올해 들어서는 규모도 커지고 편의점·이커머스 등 참여 업체도 한층 다양해졌다. 경험과 성취감을 하나의 소비 행태로 받아들이는 MZ세대 성향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전시문화가 맞물리며 ‘뽑파민(뽑기+도파민) 소비’가 확산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가챠의 풍경은 1990년대와 다르다. 주 소비층은 초등학생이 아닌 2030세대다. 1회 가격은 3000원에서 많게는 2만 원에 이른다. 캡슐 속에는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희귀 피규어나 한정판 ‘레어템’이 담긴다. 직접 구매하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해 ‘가성비 놀이’로도 통한다.
가챠 인기에 힘입어 대형 유통업체들도 속속 매장을 늘리고 있다. AK플라자 홍대점은 지난해 4월 ‘가챠폰 스트리트’를 열며 가챠 기기 62대를 도입했다. 올해 9월에는 매장을 40평으로 확장하고 기기 72대를 추가 설치했다. HDC아이파크몰 용산점은 지난해 9월 150여 개의 가챠 머신이 설치된 가챠숍 ‘가챠파크’를 열었고, 개장 첫 달 방문객만 4만 명에 달했다.
대형마트는 물론 편의점까지 가세하고 있다. 롯데마트는 전국 112개 점포 토이저러스 매장에 가챠 기기를 설치했고, 올해 1∼9월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15% 늘었다. GS25는 5월 ‘이치방쿠지’ 키오스크를 도입했고, 홍대 3개 점포의 9월 마지막 주(9월 21∼27일) 매출은 설치 초기 일주일(5월 25∼31일) 대비 169.4% 증가했다. CU도 2월 시범 도입한 캡슐토이 키오스크를 현재 76개 점포로 늘렸다.
전문가들은 감정적 만족과 사회적 소속감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의 소비 성향이 가챠 열풍을 이끌고 있다고 분석한다. 황진주 인하대 소비자학과 겸임 교수는 “MZ세대는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느끼는 긴장감과 원하는 굿즈가 나왔을 때의 성취감 자체를 소비의 일부로 받아들인다”며 “가챠는 이런 감정적 경험을 자극하는 동시에, SNS를 통해 공유하며 ‘소속감’을 느끼는 문화가 가챠 소비를 확산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가챠 산업은 캐릭터 IP 시장의 성장세를 타고 당분간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다양한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 IP가 캡슐 속 상품으로 재탄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캐릭터 시장 규모는 2020년 13조6000억 원에서 올해 16조2000억 원으로 전망된다.
다만 가챠가 중독을 유발해 사행성을 조장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가챠는 재미를 상업화한 대표적 사례로 필요가 아닌 욕망에 기반한 소비를 반복하게 만든다”며 “원하는 상품을 얻을 때까지 반복 소비하게 만드는 랜덤 구조가 도박 심리를 자극해 결국 중독과 과소비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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