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호정, “임권택 감독 영화 솔깃 설득 두 번에 넘어갔죠”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4월 6일 05시 45분


‘화장’은 개봉 전부터 김호정의 욕실 투병 장면으로 화제였다. 김호정은 ‘화장’을 두고 “‘인간의 삶을 표현하는 게 배우’라는 평소 철학을 실천할 기회였다”고 돌아봤다. 스포츠동아DB
‘화장’은 개봉 전부터 김호정의 욕실 투병 장면으로 화제였다. 김호정은 ‘화장’을 두고 “‘인간의 삶을 표현하는 게 배우’라는 평소 철학을 실천할 기회였다”고 돌아봤다. 스포츠동아DB
■ 영화 ‘화장’ 암투병 아내 연기한 배우 김호정

“어두운 배역에 첫번째 제의 거절
시나리오 보니 정말 좋은 이야기
당분간 경쾌한 배역 맡고 싶어요”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라기에 솔깃했죠.”

배우 김호정(47)은 영화 ‘화장’(제작 명필름)의 출연제의를 받았을 때 적잖이 놀랐다. 연출자는 임권택, 상대배우는 안성기였다. 욕심이 생겼다. 하지만 자신이 맡을 배역에 관한 짧은 설명을 듣자마자 제안을 거절했다.

“모든 걸 떠나서 고통을 다시 떠올리기 싫었다”고 했다. 거절한 뒤 홀연히 외국으로 여행을 떠났다. 몇 주가 지나 돌아왔다. 그 때 또 다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임권택 감독님이 꼭 함께 하길 원한다’는 제작진의 2차 설득이었다. ‘한 번 더 생각해 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받고 그제야 ‘화장’의 시나리오와 영화의 원작인 김훈 작가의 동명 단편소설을 찾아 읽었다.

“정말 좋은 이야기였다. 처음엔 시나리오도 읽지 않고 거절했다. 다시 보니, ‘내가 별건가’ 싶었다. 사실 살아가면서 중요한 결정을 하는 순간은 단 몇 초면 된다. 감사한 마음으로 연기하자고 마음먹었다.”

김호정의 고된 망설임에는 이유가 있다. 그는 한 때 지난한 투병생활을 보냈다. 병명까지는 굳이 알리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한동안 연기 활동을 중단할 정도로 그 시기는 길고 고통스러웠다.

최근 활동이 주춤한 탓에 대중에게 폭넓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실 그는 2000년대 초중반 연극무대에서 출발해 영화로 진출한 실력파 배우로 인정받았다. 시작은 2001년 영화 ‘나비’였다. 당시 이 영화로 스위스 로카르노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해 주목받았고, 이후 ‘꽃피는 봄이 오면’ ‘모두들 괜찮나요’ 등으로 활동을 빠르게 이어나갔다. 하지만 ‘나비’로 얻은 관심은 그에게 또 다른 슬럼프를 안겼다.

“그 때부터 받는 제안은 어두운 분위기의 영화가 대부분이었다. 하고 싶은 영화는 다른 배우들에게 갔다. 저예산 영화도 했지만 하루에 한두 번 씩 교차 상영하기 일쑤였다. 내가연기를 하면서 내 영화를 보러오는 관객에게 민폐를 끼친다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영화를 멈췄다.”

여러 해외 영화제에서 주목받자, 정작 고향과 같은 연극무대에 서기도 쉽지 않았다. 여러 시선을 받아야 했다. “연극도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그는 “죽음으로 치닫는 연극만 하다 심한 우울증을 겪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때문에 ‘화장’은 누구보다 김호정에게 특별하고 각별한 영화다. 암으로 죽어가는 아내, 김호정이 연기한 그 인물은 자신의 투병이 길어지고 깊어질수록 남편(안성기)의 시선이 회사의 젊은 직원(김규리)에게로 향하고 있음을 직감한다. 특히 개봉 전부터 화자 되고 있는 김호정의 욕실 투병 장면은 처절하게 무너져 내린 인간의 무기력한 모습을 집요하게 들여다본 시도로 주목받고 있다.

“특별히, 대단한 십자가를 짊어지고 연기한 건 아니다. ‘인간의 삶을 표현하는 게 배우’라고 말해왔다. 말만 그렇게 한 건 아닌지 돌아봤다. ‘화장’을 통해 내가 말해왔던 걸 실천할 기회와 딱 마주한 거다. 솔직하고 냉정하게, 이성적으로 이 작품에 뛰어들었다.”

묵직한 영화를 끝낸 탓일까. “당분간 병상에 누운 역할 보다 경쾌한 배역을 맡고 싶다”는 그는 현재 SBS 월화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에 출연 중이다. 귀족의 세계를 그린 드라마에서 소위 ‘부잣집 사모님’ 소정 역을 맡고, 유호정 백지연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거의 신인의 마음으로 즐기고 있다. 예쁜 옷 입고 매니큐어 바르고 하니 기분이 새롭다. 하하! 드라마 끝나고 9월쯤 독일 베를린으로 여행을 갈 생각이다. 좋은 공연들 많이 보고 와야겠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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