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잉여들의…’ 이호재 감독 “개봉? 어안이 벙벙하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3년 11월 27일 11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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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이호재 감독.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트위터 @bluemarine007
영화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이호재 감독.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트위터 @bluemarine007
대학 선배들은 묻곤 했다. “너희들은 언제 철 드냐”고. 고심하며 써간 시나리오를 본 교수들은 “재미가 없다”며 번번이 퇴짜를 놨다. 이들을 끼워주는 곳은 없었다.

그래서 가방을 쌌다. 대학엔 자퇴서를 냈다. 1년 간의 유럽행. 순수한 여행은 아니었다. 유럽 숙박 시설들의 홍보 영상을 찍어주고 돈을 벌면서 1년을 버티는 ‘유럽에서 살아내기’ 프로젝트였다. 그 과정을 카메라로 찍어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자는 계획까지 세웠다.

2009년 겨울. ‘단돈’ 80만원만 들고 프랑스 파리행 비행기에 오른 이들은 이호재(28), 하승엽(26), 이현학(24), 김휘(24)까지 4명이다.

부산 부경대 영화과의 같은 학번인 이들은 2학년 겨울방학 동안 다음 학기 등록금을 벌기 위해 함께 아르바이트를 했다.

하지만 수백만원의 학비를 단숨에 버는 건 역부족이었다. 이럴 바엔 유럽에서 새로운 도전을 해보자는 데 뜻을 모았다.

그게 4년 전 일이다.

당시 20대 초반이던 이들의 나이는 이제 20대 중후반에 이르렀다. 물론 그 시간은 헛되지 않았다. 우스갯소리로 꺼냈던 “영화로 개봉하자”는 농담은 결국 ‘현실’이 됐다.

이들이 1년 동안 유럽에서 살아낸 모험의 과정은 28일 ‘잉여들의 히치하이킹’(감독 이호재)이란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극장에 걸린다.

개봉을 앞두고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호재 감독은 “엄청난 도전이랄 것도 포기랄 것도 없는 시도들”이라고 했다.

‘시크’하게 말하지만 이들이 내놓은 결과물은 예사롭지 않다. 여느 코미디 영화보다 유쾌하고, 그 어떤 휴먼드라마 못지않게 찡하다.

“유럽 생활을 마치고 와서 부산에 작업실부터 차렸다. 여행기를 영화로 완성하려면 후반작업을 해야 했고 작업에 필요한 돈도 벌어야 했으니까. 그런데 1년 동안 그냥 놀았다. 하하! 나름대로 후유증이 있던 것 같다.”

장난처럼 시작한 이들의 프로젝트는 흥행 결과와 상관없이 성공했다.

후반작업을 할 때까지도 주위에선 ‘누가 본다고 사서 고생이냐’고 핀잔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대학도 졸업하지 않은, 아마추어들의 작품을 극장에 걸어줄 만한 배급사가 없다는 것도 ‘편견’이었다. 후반 작업을 마친 이호재 감독은 올해 3월, 이름을 아는 거의 대부분의 영화 배급사에 무작정 파일을 보냈다. 며칠도 안돼 연락이 왔다. CJ 계열사인 CGV 무비꼴라쥬에서다.

이 감독은 “요즘은 어안이 벙벙하다”고 했다.

“구체적인 계획이나 목표가 없어서 가능한 일들 같다. 계획이 분명했다면 그걸 이뤄야 한다는 생각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을 테니까. 우린 목표가 없어서 큰 고민도 없었다.(웃음) 차선책이 없으니까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영화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이호재 감독.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트위터 @bluemarine007
영화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이호재 감독.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트위터 @bluemarine007

유럽으로 가기 전 상상하며 꺼냈던 말 중 현실로 이뤄진 건 또 있다.

당시만 해도 ‘영국의 유명 록밴드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는 일로 여행을 마무리하자’던 말은 그저 농담이었다.

하지만 기발한 호텔 홍보 영상으로 현지의 유명 인사가 된 이들에게 영국 밴드 아르코는 ‘진짜’ 뮤직비디오 촬영을 제의했다. 이들은 홍보 영상을 만들며 번 돈을 고스란히 쏟아 붓고 뮤직비디오를 완성했다.

“대학에 다닐 때 우리 넷은 뒤떨어지는 애들이었다.(웃음) 내가 가진 재능을 의심한 적도 많았고. 이젠 실패한다는 가능성은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일을 하든 실패란 전제를 두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그게 유럽에서 돌아온 우리에게 온 가장 큰 변화다.”

대학 국제통상학과를 다니며 평범하게 생활하던 이호재 감독이 영화 연출을 꿈꾸기 시작한 건 부산 국도예술관에서 2년 가까이 영화를 트는 영사 기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부터다.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이 개봉하는 28일, 이호재 감독은 국도예술관에서 자신의 영화를 틀고 관객과의 대화에도 나선다. 그는 “그날 직접 영사 기사를 맡을까 생각하고 있다”며 웃었다.

프로젝트를 함께 완성한 4명은 주위에서 자주 “잉여”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자신들의 재능을 어느 곳에 써야할지 헤매던 시절이었다. 좌절하는 대신 과감한 도전과 모험에 나선 덕분에 이들은 또래보다 일찍 꿈을 이뤘다.

이호재 감독은 이미 다음 작품 구상도 마쳤다.

“그림 요리 사진 영상 등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을 모을 생각”이라며 “문화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찾아가는 프로젝트를 계획 중인데 기부와는 다른 방식이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두 번째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시기는 2015년. 당장 나서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 감독은 내년 초 군복무를 앞두고 있다. 4인방 가운데 하승엽, 이현학은 현재 육군으로 복무 중이다.

“1년 간 함께 지냈지만 우린 단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 짜증도 내지 않았고. 다음 프로젝트 역시 우리 넷은 함께 한다.”

스포츠동아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트위터@madeinha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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