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불암 “대사 외우다 눈물 뚝… 사랑도 가벼워진 시대 가족의 의미 되새겨”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20일 03시 00분


코멘트

최근 종영한 채널A ‘천상의 화원 곰배령’

종영한 채널A 드라마 ‘천상의 화원 곰배령’에 출연했던 최불암은 “연기는 다른 사람의 영혼이 찾아오는 일”이라고 했다. 많은 영혼을 담았던 그릇이어서일까. 그 그릇은 넓고 편안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종영한 채널A 드라마 ‘천상의 화원 곰배령’에 출연했던 최불암은 “연기는 다른 사람의 영혼이 찾아오는 일”이라고 했다. 많은 영혼을 담았던 그릇이어서일까. 그 그릇은 넓고 편안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참 깨끗한 드라마였어. 영혼을 맑게 만드는 사랑도 유행같이 가벼워지기 쉬운 시대에 진정한 의미의 사랑, 그리고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지요. 아름답고 따뜻한 얘기에서 다들 배울 게 많았을 거야.”

최근 종영한 채널A 주말드라마 ‘천상의 화원 곰배령’의 큰어른 최불암(72)을 만났다. 서울 여의도의 잘 꾸며진 카페에서 만났지만 넉넉하고 푸근한 특유의 말투 덕택인지 인터뷰 내내 시골 마을의 평상에 앉아 있는 분위기였다. 진지한 표정으로 인터뷰에 응한 그는 내내 특유의 ‘파∼’ 하는 웃음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극 중 재인(유호정)의 아버지 부식 역을 맡았다. 가족까지 등진 채 고향 땅을 일구고 살던 괴팍한 노인이었지만 딸 재인이 갑작스레 곰배령에 찾아들면서 주변 사람들과 화해하게 된다.

그는 “부식의 영혼을 끌어안고 살기 위해 촬영장에서도 늘 대기실이 아닌 세트장에 혼자 있었다”며 “촬영장에 깔아놓은 흙에서 먼지가 나와 코를 풀면 흙이 덩어리째 나왔다”고 말했다. 캐릭터에 몰입하려는 그의 선택이었다. 시골 노인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분장을 최소한으로 했고, 촬영장의 소품을 일부러 어질러 놓기도 했다.

“부식의 방 옷걸이에 여름에 쓰는 부채를 자질구레한 물건들과 함께 무심히 걸어 놨지. 그 모습이 참 좋았다는 사람이 있더라고, 정말 시골집 같았다면서. 사는 게 어디 그리 매일 깔끔하고, 정돈돼 있나?” 요즘 배우들은 드라마의 리얼리티보다는 화면에 예쁘고 멋지게 나오는 일을 더 신경 쓴다고 그는 일침을 놓았다.

극 중 부식은 화영(김영애)과 오랜 세월 반목하다 다시 합치면서 황혼의 로맨스를 꽃피운다. 김영애와는 1971년 ‘수사반장’ 이후 40년 만에 처음으로 연기 호흡을 맞췄다.

“김영애와의 연기, 아. 좋았지. 허허…. 화영을 다시 만나 다방에 가는 장면 있잖아? 거기서 화영에게 야단맞는 가운데 ‘당신 없이 내가 살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며 고백하는 부분이 개인적으로 가장 감동적이었어.”

TV에서 이른바 ‘막장 드라마’가 넘치는 가운데 보기 드문 ‘청정 드라마’였던 ‘곰배령’의 시즌2를 주문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도시민의 농촌 향수를 달래주는 드라마로 계속 남기를 바랍니다” “2편이라 칭하며 다시 나왔으면 합니다” 등의 의견도 올라왔다.

“연기자들도 전원일기처럼 롱런 드라마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많았죠. 수면 아래 깊은 울림을 감추고 담담하게 흐르는 물 같은 이야기니까…. ‘젊은 여자’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산다는 게 참 희망적이지.” 그가 말하는 젊은 여자들은 극본을 쓴 40대의 박정화 고은님 작가다. 최불암은 “밤에 대사를 외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툭툭 떨어질 때 작가와 공감했다는 점에서 가장 기뻤다”고 말했다.

그는 드라마 촬영 중에도 줄곧 KBS1 ‘한국인의 밥상’ 촬영을 위해 주 이틀 정도는 지방에 다녔다. “나이가 들수록 일이 있어야지. 아무 목적 없이 가만히 있으면 오욕칠정(五慾七情)에 끌려 들어가고 말아.”

힘들지 않은지 물으니 “멀리 가 봐야 자동차가 가지 내가 가나”라며 헛헛하게 웃는 그였지만 드라마를 찍으면서 몸무게가 4kg이나 줄었다고 했다. 드라마를 마쳤으니 당분간 쉬면서 부식에서 최불암으로 돌아가겠다며, 그는 며칠 전 다녀온 남도의 섬 이야기를 꺼냈다.

“섬은 유배의 공간이잖아. 단절된 공간에서는 갈대 하나 풀잎 하나도 다 친구같이 가깝게 느껴져. 최후의 여행지가 섬이란 말도 있어. 나도 이제 비우는 작업을 시작하려고. 연기자는 기억하기보다 잊어버리는 게 중요하지. 그래야 다른 사람이 찾아오지.”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