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집중분석] 현실성 0% 유치함 100%로 사랑받는 ‘부탄’ ‘검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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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15일 15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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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세스\' 검사 마혜리는 나이트 클럽에서 미성년자와 원조교제했다는 오해를 받고 경찰에 연행되며 \'부검(부킹검사)\'이라는 별명을 얻는다. \'검사 프린세스\' 중 한 장면.
\'프린세스\' 검사 마혜리는 나이트 클럽에서 미성년자와 원조교제했다는 오해를 받고 경찰에 연행되며 \'부검(부킹검사)\'이라는 별명을 얻는다. \'검사 프린세스\' 중 한 장면.
'추노'의 열혈 시청자였던 김지현 씨(28·회사원)는 '추노' 종영과 함께 고민에 빠졌다. 제작 단계부터 기대를 모은 '신데렐라 언니(KBS2)' '개인의 취향(MBC)'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김 씨는 우연히 '검사 프린세스(SBS·이하 검프)'로 채널을 돌렸다.

초미니스커트에 망사스타킹, 15cm는 됨직한 하이힐을 신고 검찰청에 출근하고 선배들에게 따박따박 말대꾸하는, 실제 검사와 싱크로율 0% 일 것 같은 신임검사 마혜리(김소연 분)에 욕이 나오려는 찰나. 나이트클럽에서 대학생을 가장한 미성년자와 부킹했다가 원조교제로 오해받고 경찰에 연행되는 어리숙한 '부킹 검사' 마혜리를 보며 피식 웃음이 나왔다.

현실감 없고 엉성한데다 유치하기까지한 드라마였지만 1시간 동안 유쾌할 수 있다는 것은 본방송을 사수하는 이유가 됐다.

일명 'B급 드라마'라는 불명예를 안고도 승승장구하는 드라마는 '검프' 뿐만이 아니다. 10% 안팎의 시청률로 출발해 20% 고지를 넘보는 월화극 강자 '부자의 탄생(KBS2·이하 부탄)'과 만화 원작의 주말극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MBC·이하 신불사)'는 유치하다고 욕하다가 그래도 자꾸 보게 되는 대표적인 B급 드라마. 이들이 사랑받는 이유를 들여다봤다.

▶ 에피소드 중심의 '미드'식 전개

# 오성그룹 이중헌 회장(윤주상)이 아버지라고 착각한 최석봉. 부자지간임을 확인하려 유전자 검사를 계획한다. 비서를 시켜 화장실 바닥을 뒤지게 하고 재벌 회장들끼리 머리카락 싸움을 붙이는 등 노력 끝에 머리카락을 얻어 검사에 성공한다. (부자의 탄생 6회)

# 명품 경매에 참가하러 검사 워크숍 빠진 것이 들통 나 미운털 제대로 박힌 마혜리 검사. 검사 사회에서 왕따 당하고 부장검사는 그에게 사건을 배당하지 않는다. 제대로 된 검사가 되지 않으면 옷 신발 카드를 모두 압수하겠다는 마 검사의 아버지. 마 검사는 공을 세우겠다고 불법 도박장에 잠입해 수사를 벌이다가 사고만 친다. (검사 프린세스 3회)

'부자의 탄생' 최석봉(지현우)은 목걸이만 남기고 떠난 재벌 아버지를 찾으려 동분서주한다. '검사 프린세스' 마혜리는 머리가 좋아 사법고시는 통과했지만 내가 세상의 중심인 천방지축 검사. '부탄'은 매회 최석봉의 아버지라 의심되는 인물을 내세우고 '검프'는 마 검사에게 새로운 사건을 맡기며 에피소드를 만든다. 미국 드라마에서 흔히 보이는 에피소드 중심의 전개다. 매회 새로운 에피소드가 등장하다보니 진행도 빠르다. 또 초반부터 드라마를 챙겨 보지 않은 시청자라도 줄거리를 따라잡지 못해 채널을 돌리는 일은 없다.

'부탄'을 즐겨 본다는 한 누리꾼은 "대부분 드라마가 한 회라도 빼먹고 안 보면 스토리 연결이 되지 않아 이해하기 힘든데 '부탄'은 한 회를 걸러도 무리 없이 따라갈 수 있다. 컴퓨터를 하면서 드라마를 흘끗거리기만 해도 내용을 알 수 있고 재밌는 장면은 놓치지 않을 수 있어서 부담 없이 보기 좋다"고 말했다.
초반부터 확실한 러브라인을 보여준 '부자의 탄생'은 중반부 이후 추운석-부태희(위), 최석봉-이신미로 러브라인을 재정비했다. '부자의 탄생' 중 한 장면.
초반부터 확실한 러브라인을 보여준 '부자의 탄생'은 중반부 이후 추운석-부태희(위), 최석봉-이신미로 러브라인을 재정비했다. '부자의 탄생' 중 한 장면.

▶ 명쾌한 러브라인, 연기력 논란 없는 연기자

B급 드라마의 또 다른 특징은 명쾌하다는 것이다. 이는 러브라인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검프' 마 검사는 불법 도박장에서 자신을 구해준 윤세준 검사(한정수)에게 호감을 느낀다. 호감을 느낀 이상 지체함은 없다. 윤 검사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하고 바로 차인다. 호감을 느끼고 차이기까지의 과정이 드라마 2회 분량 안에 벌어졌다.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라는 진부한 대사도 할 시간도 없다. 주인공들이 속마음을 그대로 보여주니 시청자들이 답답해하지 않아도 된다.

'부탄'도 드라마 초반부터 확실한 러브라인을 보여줬다. 야심에 찬 추운석(남궁민)은 이신미(이보영)를 사랑하는 척 하고, 부태희(이시영)는 추운석을 소유하려고 한다. 중반을 넘어서자 사랑에 관심 없던 이신미가 최석봉과 사랑에 빠지자 추운석은 야심을 부태희로 옮겼다.

출연진들의 검증된 연기력도 한 몫 한다. 지현우 이보영 김소연 박시후 등 톱스타는 아니더라도 연기력 논란이 없는 배우들은 현실성 없는 캐릭터에도 힘을 불어 넣는다. '부탄'의 주연급 조연 이시영은 한국판 패리스 힐튼 부태희 역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코믹연기의 달인'이라는 호평을 끌어냈다. '검프'에서 마 검사 때문에 뒷골 잡는 나중석 부장검사(김상호)를 보며 배꼽 잡았다는 누리꾼들도 많다.

▶ 힘든 현실 외면하고 싶은 마음 건드린 '키치 드라마'

B급 드라마를 한 번도 보지 않은 이들은 왜 그런 드라마를 보느냐고 핀잔주지만 일단 유치찬란함에 빠지면 중독된다는 것이 시청자들의 '변명'이다. '검프' 시청자 게시판에는 "처음엔 검사라는 여자가 기본적인 상식도 없나 하면서 짜증스러웠는데 볼수록 사랑스럽네요(ID queer 25)", "유치찬란하다 경솔하다 등 평가가 아쉽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 진짜 검사 얘기를 하는 다큐가 아니다(mirimida)" 등 '검프가 생활의 활력소'라는 의견이 자주 올라온다. "한숨만 나오는 요즘, 꼼짝도 못하는 일상이지만 '부자의 탄생' 보는 낙으로 살고 있습니다(사파이어)"는 의견도 보인다.

드라마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국문학과 교수는 "B급 드라마가 싸구려 드라마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장르적 특성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부탄' '검프' '신불사' 같은 드라마는 가볍고 재기발랄한 키치(Kitsch)적 감성이 녹아있는 키치 드라마"라고 칭하며 "진지함 고급스러움 정통이라는 것에 대한 반발심리는 언제나 존재하는데 이들 드라마가 그런 감성을 코믹하게 잘 건드리고 있다"고 평했다.

현실성이 없다고 비난 받는 것에 대해서는 "현실성이 없어서 인기를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며 "현실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굳이 드라마에서까지 현실을 반영한 것을 볼 필요가 있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다. 현실에 지치며 현실을 조롱한 패러디물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특히 "천안함 사고로 국가 전체적으로 애도 분위기가 형성되며 예능 프로그램들이 결방되고 있는데 '부탄' '검프' 등 다소 코믹한 드라마는 예정대로 방영되고 있다. 엄숙함을 강요받는다고 느낄 수 있는 상황에서 풀리지 않는 답답함을 느끼는 시청자들이 이런 드라마를 탈출구로 느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아연 기자 aykim@donga.com


▲‘검프’ 김소연, “허벅지 때문에 미니스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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