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박지하] ‘파스타’ 최현욱 셰프를 통해 본 리더십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2월 25일 15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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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어느날 전화가 와서 파스타를 먹자고 했다. 지난번엔 크림스파게티를 시켰던 이 친구, 메뉴판을 보자마자 '알리오 올리오'. 드라마 '파스타'를 보고 그렇게 파스타가 먹고 싶었단다. 나도 '파스타'를 봤더니 파스타가 심하게 먹고 싶어졌다. 마냥 맛있게 먹던 피클도 왠지 의심스럽다.

'파스타'를 보고 먹는 파스타는 이전의 파스타와 달랐다. 그저 면이 아니라 누군가의 그런 땀과 노력이 서린 작품이 아닐까 생각이 드는 것이다(사실 내가 간 파스타집은 라스페라 같은 고급 이탈리안 레스토랑은 아니지만!). 파스타는 사랑이야기면서, 파스타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이다.

왼쪽부터 ‘파스타’ 4인방 오세영(이하늬 분) 최현욱(이선균 분) 서유경(공효진 분) 김산(알렉스 분). MBC 자료사진
왼쪽부터 ‘파스타’ 4인방 오세영(이하늬 분) 최현욱(이선균 분) 서유경(공효진 분) 김산(알렉스 분). MBC 자료사진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면 아마 한번쯤 '똑같아, 똑같아!'를 외쳤을지도 모르겠다. 여성들이라면 똑같은 이야기도 여자 셰프가 좋게 말하면 안 듣고 사나운 남자 셰프가 소리 지르면 잘 듣는 남자 요리사들을 보면서 느꼈을 것이다. 신입사원이라면 눈물을 뿌리며 내일부터 안나온다고 외치는 주방보조 은수와 두 셰프 사이에 끼여서 봉골레를 들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입사원 서유경을 보면서, 관리자급이라면 나란히 일하면서도 서로 한 마디 안 나누다 결국 코스를 망치는 요리사들 때문에 복장 터지는 쉐프를 보면서 '똑같아 똑같아.' 요리사와 홀직원 간의 은근한 알력을 보면서, 나랑 비슷할 줄 알았던 월급이 달랐다는 것을 알았을 때 요리사들의 분노를 보면서…. 아, 일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역시 저런건가.

▶ 최현욱 셰프의 '상명하복' 리더십도 때론 효과적

최현욱(이선균 분) 셰프는 2007년 방영된 드라마 '외과의사 봉달희'의 '버럭범수' 못지않게 소리를 질러댄다. 자기 맘에 안 든다고 가차 없이 사원을 해고시키는 냉혈한인가 하면,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인격적인 모독도 서슴지 않고 사장한테도 뻣뻣하다. 이런 셰프니 주방보조는 한 달 만에 눈물을 흘리며 그만두겠다고 하고, 부주방장과 국내파 요리사들은 겉돌기만 한다.

정말로 그런 상사를 만난다면 어떨까? 그런 리더 좋은 리더일까? 답은 '그때그때 달라요'이다. 리더십스타일은 골프채와 같아서 하나의 정답이 있다기보다는 조직의 특징과 상황에 가장 적합한 것이 있을 뿐이다. 최 셰프는 민주적이라기보다는 지시적이면서 스스로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기준을 쫓아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리더십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스타일을 일반 조직에서 따라 한다면 상당한 문제를 일으키는 리더이겠지만 주방이라는 특수상황, 항상 시간에 쫓기기 때문에 빠른 의사결정이 필요하고 불과 칼이 춤추는 위험한 상황에서는 통용될 수도 있고 어느 정도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리더십은 리더에게 약점이 생기는 순간 무너진다. 요리사와 셰프 사이의 절대적인 실력 차이에 기반해 리더가 항상 옳다는 가정 하에 무엇이든지 리더의 생각대로 되기 때문에 리더가 스스로 말한 것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 (파스타에서는 주방에서 연애하는 경우) 혹은 리더가 실수하는 경우 리더십의 근간 자체가 무너지는 것이다.

주방 직원들끼리의 연애를 용납하지 않았던 최현욱 셰프는 부하직원 서유경과 연인사이임이 밝혀지자 ‘라스페라’를 떠난다. ‘파스타‘ 캡쳐화면.
주방 직원들끼리의 연애를 용납하지 않았던 최현욱 셰프는 부하직원 서유경과 연인사이임이 밝혀지자 ‘라스페라’를 떠난다. ‘파스타‘ 캡쳐화면.


이런 리더는 외롭다. 모든 것을 리더가 결정한대로 따른다는 것은 반대로 모든 것을 리더가 홀로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다. 최현욱의 셰프가 외로운 자리라는 것을 알아주는 사람은 또 다른 셰프인 오세영(이하늬) 뿐이다.

최현욱 셰프 같은 리더는 연인이 아니라 부하직원으로서도 서유경(공효진)처럼 웬만한 구박에도 꿋꿋한 사람과 궁합이 맞는다. 하지만 어디 세상에 그런 사람들이 흔한가. 파스타의 주방은 최현욱과 맞는 사람들과 맞지 않는 사람들로 분열되고 만다. 하지만 나랑 맞는 사람들과만 일할 수 있는 행복한 리더는 흔하지 않다.

▶ 팀워크 회복? '국내파'에게 비전부터 제시해야

'홍해처럼 갈라진' 주방을 통합할 수 있는 방안은 뭘까. 국내파의 급여를 이태리파만큼 올려주는 것도 최현욱이 리더로서 해야 할 몫이다. 그러나 김 사장의 지적대로 급여를 올려준다고 해서 주방의 분열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서유경과의 연애를 들키지 않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러나 애당초 연애를 시작하지 않았다고 해도 갈라진 주방에 팀워크가 찾아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요리사와 같은 개인의 실력에 기반한 조직의 리더인 셰프로서 필요한 것은 개개인에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태리파들이 셰프에게 충성하는 것은 혼나면서 배운 경험이 있기 때문이고, 그렇게 성장하고 싶다는 더 큰 비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유경이 혼나고 또 혼나도 꿋꿋하게 버티는 것도 자신의 파스타, 자신의 가게에 대한 비전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국내파들이 셰프와 반목하는 것은 초반의 매정한 구조조정으로 인해 라스페라에서는 이태리파에 밀릴 수밖에 없다고, 비전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국내파와 이태리파의 대립은 박힌 돌과 굴러온 돌의 대립이기도 하지만 비전을 박탈당했다고 느끼는 사람들과 비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사이의 대립이다.

최현욱 셰프는 걸핏하면 소리지르고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은 해고하는 ‘상명하복’ 리더십으로 주방을 지배한다. 드라마 ‘파스타’ 캡쳐화면.
최현욱 셰프는 걸핏하면 소리지르고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은 해고하는 ‘상명하복’ 리더십으로 주방을 지배한다. 드라마 ‘파스타’ 캡쳐화면.
국내파는 기회만 주어진다면 라스페라를 떠날 것이다. 중간에 부주방장이 스카우트제의를 받고 떠나려다가 만 것은 라스페라에 대한 미련이 아니라 새로운 스카우트 제의가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았기 때문일 뿐이다. 국내파들과 해고당한 3인방이 라스페라의 주방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는 모습이 극적인 설정에서는 주인공과 맞서는 반동인물들의 회합임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짠하고 밉지 않은 것은 어딘가 우리도 그 기분 이해가 되기 때문 아닐까.

사실 모든 조직에서 리더십을 위해 개개인에게 비전을 찾아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다. 어떤 조직에서는 개인적으로 승진하겠다는 욕심보다는 '같이 가자'는 생각으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도록 이끄는 리더십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파스타의 주방처럼 각자의 전문성과 숙련 기술을 바탕으로 모여 기본적으로는 혼자 작업하는 사람들의 조직이라면 각 개인들이 어떤 비전을 유지할 수 있는가가 중요해진다.

▶ '리더' 최현욱, 주방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그래도 최현욱이 셰프로서 시청자들의 화를 돋우지 않는 이유는 좋은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가만히 보면 입도 험하고 무섭게 혼내기는 하지만 짜증은 내지 않는다. 화를 낼 때 내더라도 왜 무엇이 문제이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분명히 말해준다. 알고 보면 이런 리더 흔하지 않다. 파스타 라인에서 밀려나서 속상해하는 연인 서유경에게 요리사라면 이것저것 다 배워야 한다고 담담하게 말하는 것도 단기적인 관계의 유지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상대방의 성장을 생각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방식의 가르침이 어디까지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최현욱은 결국 라스페라를 떠났다. 일차적인 원인은 서유경과의 연애가 들켰다는 것이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주방에서 연애를 하는 것으로 꼬투리를 잡아 해고시켰던 리더로서의 자신의 과거 언행에 있다.

그는 주방으로 어떻게 다시 돌아올 것인가. 파스타는 사랑이야기면서, 서유경이라는 주방보조의 요리사로서의 성장 드라마이자 최현욱이라는 셰프의 리더십 성장 드라마이다

드라마를 보다가 얻은 중요한 요리팁 하나. 간은 식은 다음에 보라는 것이다. 파스타가 당초보다 4회 연장 방송될 예정이다. 천천히 먹다보니 먹는 시간을 초과하여 식어버릴 것까지 생각해서 간을 보는 것처럼, 드라마가 애초의 분량을 초과할 것까지 생각해서 세팅이 될지 궁금하다. 마지막까지 '불어 터지지' 않기를.
박지하 / 칼럼니스트 jihapar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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