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정주현]인간과 동물이 교감할 때, 하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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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25일 15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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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에 대한 개의 변함없는 충성심을 뭉클하게 그린 영화 \'하치 이야기\'의 한 장면. 사진제공 코콘그룹
주인에 대한 개의 변함없는 충성심을 뭉클하게 그린 영화 \'하치 이야기\'의 한 장면. 사진제공 코콘그룹
'당신을 기다립니다'.

돌아오지 않는 주인을 10년 동안 기다린 개.

'하치 이야기'의 줄거리는 그 어느 영화보다도 간단하다. 그리고 그 줄거리에 무척이나 충실하다. 그래서 이 영화에는 극적 긴장감도, 짜릿한 반전도 없다.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자 하는 관객에게 이 영화는 그리 추천할만한 영화가 아니다. 하지만 만일 당신이 단 한번이라도 동물과 교감을 나누어본 적이 있다면, 이 영화는 매우 다른 의미를 가질 것이다.

하치는 저 멀리 일본의 아키타 현에서 태어났다.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너와 누군가에게 배달될 예정이었지만, 우연히 미국의 한 시골 기차역에 남겨졌다. 그리고 운명처럼 자신의 주인 파커(리처드 기어 분)를 만난다.

어린 강아지를 차마 역에 남겨둘 수 없었던 파커는 하치를 집으로 데려간다. 그러나 아내는 하치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함께 살던 반려견을 먼저 보내 본 경험이 있는 그는 알기 때문이었다. 동물의 시간은 사람의 그것과 다르게 흐른다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동물과의 만남은 예정된 이별을 전제로 한다는 것을.

주인의 장례식이 진행될 때 마당에 있던 하치가 방안으로 뛰어들어 사진을 보며 짖고 있다. 일본판 '하치이야기'에서. 동아일보 자료 사진
주인의 장례식이 진행될 때 마당에 있던 하치가 방안으로 뛰어들어 사진을 보며 짖고 있다. 일본판 '하치이야기'에서. 동아일보 자료 사진

▶ 운명적 만남, 예정된 이별

하지만 결국 하치는 파커 교수의 가족이 된다. 어쩌면 그것은 처음 그들이 만났을 때부터 이미 정해진 운명이었을 것이다. 파커와 하치가 서로 눈을 맞추고 체온을 느끼는 것을 보는 순간 아내는 깨닫게 된다. 자신의 두려움은 하치를 받아들이기 위한 일종의 통과의례일 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하치는 그렇게 가족의 일원이 되어 무럭무럭 자란다. 그리고 매일 출퇴근하는 파커 교수를 따라 기차역으로 간다. 그 곳에서 아침이면 주인을 배웅하고, 오후 다섯 시면 어김없이 주인을 마중한다. 함께 기차 길로 산책을 가기도 하고, 가족의 대소사도 같이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이별의 시간이 찾아온다. 이를 직감한 하치는 출근하려는 파커를 보내지 않으려 이상행동을 하지만 이를 알 턱이 없는 주인은 여느 때처럼 기차역으로 향한다. 하치는 평소와 달리 공을 물고 기차역으로 따라가 파커에게 건네고, 그가 던지는 공을 스스로 물어온다. 처음 성공하는 공 물어오기에 주인은 기뻐하며 개찰구를 빠져나간다. 그리고 이것이, 긴 기다림의 시작이었다.

시종일관 잔잔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이 영화는 결코 과장되지도 인공적이지도 않다. 실제로 개를 길러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반려견과의 생활을 그저 담담하게 그려낸다. 그렇기에 이성적으로 꼼꼼하게 따지면서 보기 보다는 그저 나에게, 또는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한번쯤 있을 법한 이야기를 보는 듯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된다.

애초에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 지 그 시작과 결말을 이미 다 알고 있지만, 식상하다거나 지루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즐거운 현재에는 기뻐하고 다가올 슬픔에는 준비하는 순응적 영화보기가 계속된다. (다시 말하지만, 개를 길러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이 영화의 감독은 라세 할스트롬이다. 그는 전통과 자유의 갈등을 섬세하게 그린 '초콜릿'이나 가족에 대한 의미를 되새겨보게 한 '길버트 그레이프'의 감독이기도 하다. 소소한 일상을 통해 삶에 대한 성숙한 고찰을 보여주는 감독답게, 그는 이 영화에서도 단순히 서정적인 동화를 뛰어넘는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다.

이 영화의 주제는 인간과 동물 사이의 교감과 사랑이다. 영화 초반부에 '인간과 동물이 맺은 첫 파트너십'이라고 밝힌 것처럼 인간과 개가 맺은 인연의 역사는 아주 오래됐고 또 친밀하다. 그리고 이 영화의 특별한 점은 결코 인간의 관점에서만 이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돌아오지 않는 주인을 늘 기다리던 기차역에서 하염 없이 기다리는 하치의 가슴 뭉클한 모습. 사진제공 코콘그룹
돌아오지 않는 주인을 늘 기다리던 기차역에서 하염 없이 기다리는 하치의 가슴 뭉클한 모습. 사진제공 코콘그룹

▶ "하치가 자넬 선택한 걸세"

극의 중간 중간 카메라는 하치의 시선으로 주인을 바라본다. 그 시선 속에는 색이 없고 인간의 언어란 이해할 수 없는 소리의 집합이며 주인과 눈을 맞추기 위해서는 한참을 올려다 보아야 하는 높이의 차이도 있다.

주인에게는 가족도 있고 직장도 있으며 이웃들도 있지만, 하치가 바라보는 세상은 언제나 주인과 주인이 살고 있는 주변뿐이다.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이 시선은, 바로 사람과 동물과의 관계가 결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조용하고도 강렬하게 깨닫게 해 준다.

이는 파커의 절친한 친구인 일본인 교수의 입을 통해 인간의 언어로 구체화되기도 한다. 처음 하치를 어떻게 발견했는지를 설명하는 파커에게 그는 말한다.

"하치가 자넬 선택한 걸세."

인간 중심의 세계관에서 한 발짝만 떨어져 보면 우리는 우리의 사고가 얼마나 편협한지 알 수 있다. 모두가 잠들었다고 하는 깜깜한 밤에 얼마나 많은 동물과 곤충이 활기차게 하루를 시작하는 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인간은 배고픈 동물이 사람이 사는 곳으로 내려왔다고 하지만 실상은 인간이 원래 그들이 살던 곳을 침략했을 수도 있다. 우리는 동물을 보호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들이 생태계의 균형을 통해 우리를 보호하고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파커는 자신이 하치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왔다고 생각하지만 거꾸로 하치가 파커를 발견하고 선택했던 것일 수도 있다. 오로지 인간만이 만물의 중심이라 생각하는 우리의 절대적인 믿음에, 이 영화는 하치라는 개의 시선을 통해 세상의 다른 반쪽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질문을 자연스럽게 던진다. 감독은 다시 한번 소소한 일상 속에 우주의 섭리를 마술처럼 심어 놓은 것이다.

1920-30년대 일본 동경에서 실제 생존했던 하치코라는 개에 관한 실화를 영화로 옮긴 일본판 '하치이야기'의 한 장면. 이 영화는 2002년 국내 개봉했다.동아일보 자료사진
1920-30년대 일본 동경에서 실제 생존했던 하치코라는 개에 관한 실화를 영화로 옮긴 일본판 '하치이야기'의 한 장면. 이 영화는 2002년 국내 개봉했다.동아일보 자료사진

▶ 애견가라면 눈물 없이 보기 힘든 감동

이 영화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또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리처드 기어라는 배우의 호연이다. 그는 더 이상 '귀여운 여인'에게 꽃다발을 전하던 20년 전의 훈남이 아니다. 몸은 더 이상 훤칠하거나 단단하지 않고, 얼굴에는 세월의 두께가 내려앉았다.

하지만 그러면 어떠한가. 이제 그는 날렵하지는 않지만 푸근하고 부드러운 따뜻함을 온 몸에 지니게 되었다. 핸섬하고 냉철한 기업 사냥꾼의 이미지는 사라졌지만 그 보다 훨씬 친숙하고 사랑스러운 평범한 중년 남자의 미소를 머금게 되었다. 더 이상 젊고 매력적인 남성상만을 고집하지 않는 여유로움이 그를 더욱 자연스럽게 인간으로서, 또 배우로서 영화 속에 녹아들게 한다.

이성의 잣대로만 본다면 이 영화에는 사뭇 다른 평가가 내려질 수 있다. 일본판 원작과 비교하여 영화적 완성도를 평가한다면 이야기는 또 다른 방향으로 나갈 수 있다. 하지만 영화보기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며, 지극히 감성적일 수 있는 영역이다. 그러니 극장에서 울었다고, 크게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느덧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하치도 이제 늙고 병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기차역을 지키고 있다. 긴 기다림의 시간 동안, 하치는 늘 이렇게 말하고 있었던 듯 보인다.

'기차 소리가 들려요. 주인님께서 오실 시간이네요. 저는 오늘도 기다립니다…하치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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