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커버스토리] 日배우 오다기리 조

  • Array
  • 입력 2009년 12월 3일 18시 26분


코멘트
아름다운 루저 혹은 4차원? 오다기리 조 연구

순정만화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큰 눈망울에 계란형 얼굴의 '꽃미남', 티셔츠와 청바지만 입어도 충분히 멋진 몸매, 게다가 여성들의 모성을 자극하는 소년 같은 정서….

한국에서 일류(日流)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배우가 '오다기리 조(34)'이다. 한국의 2030세대에게 그는 일본 영화를 상징하는 인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메종 드 히미코', '유레루', '오디가리 조의 도쿄타워' 등이 국내 팬들의 큰 사랑을 받았고, 김기덕 감독의 '비몽'(2008)에서는 이나영과 연기하는 등 한국과 인연도 깊다.

동양미와 서구미가 조화를 이룬 마스크. 남자다우면서도 왠지 여려 보이는 그의 몸. 그리고 오다기리 조만의 특유한 표정과 태도가 만들어내는 분위기. 그를 좋아하는 팬들은 "오다기리 조의 매력은 언어로 표현하기가 힘들다"고 한숨짓는다. 하지만 그가 등장하는 영상 속 연기는 잠시만 들여다봐도 빠져들게 되는 마법 같은 힘이 있다.

오다기리 조는 일본보다 한국에서 더 인기가 높은 배우다. 스포츠동아 양회성 기자.
오다기리 조는 일본보다 한국에서 더 인기가 높은 배우다. 스포츠동아 양회성 기자.
▶외롭고도 고고한 현대인을 상징

일본의 미남배우 중 키무라타쿠야가 메인스트림, 즉 주류라고 한다면 오다기리 조는 반대쪽에 서 있는 존재다. 그는 비주류이자 아웃사이더의 이미지를 발산하면서도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를 초월하는 무심한 내공을 발산하는 배우다.

오다기리 조는 1999년 연극무대에서 연기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작품이 'Dream of Passion(열정의 꿈)'이었다.

영화계에는 배우가 아닌 감독으로 데뷔했다. 당시 스물네살의 오다기리 조는 7분짜리 단편영화 '퓨어리 인 메소토'를 감독했다. 그리고 성폭행을 당한 뒤 캬바레와 에로물 촬영 현장을 전전하는 소녀와 잘못된 휴대폰 메시지로 연결돼 동거하는 내용의 '플라토닉 러브'에 출연했다. 이것이 영화배우 인생의 시작이었다.

이후 일본의 대표적인 남자배우로 급성장한 그는 2007년 '도쿄타워'에서 홀어머니와 희망 없는 일상을 살아가는 밑바닥 청년을, 최근작 '플라스틱시티'에서는 아마존에 버려진 일본계 브라질인 키린으로 욕망과 복수를 넘나들며 파괴되어 가는 조직보스를 연기했다.

국내 팬들의 기억에 가장 많이 남은 작품은 아마도 이누도 잇신 감독의 '메종 드 히미코(2005)'일 것이다. 그는 이 영화에서 게이클럽을 운영하다 은퇴한 후 게이 실버타운을 운영하는 남자 마담 히미코의 동성애 연인 하루히코로 출연했다. 히미코의 딸 사오리는 아빠를 증오한다. 왜냐하면 아빠 히미코는 게이로 엄마와 자신을 버리고 떠났기 때문이다. 불치병에 걸린 아빠는 애인과 함께 딸을 찾아온다. 히미코의 젊은 동성연인 하루히코 역이 바로 오다기리 조였다. 아빠의 애인으로 딸과 매일 티격태격하며 사랑을 쌓아가는 게이청년.

오다기리 조는 여러 작품에서 마이너리티의 우울한 내면을 그려내 호평 받았다. 외로움과 우수에 젖은 눈빛은 국경과 언어의 한계를 넘어 해외 관객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다.

영화 ‘피와 뼈’에서 재일한국인 ‘김준평’의 아들로 등장했다.
영화 ‘피와 뼈’에서 재일한국인 ‘김준평’의 아들로 등장했다.


▶한국과 은근히 인연이 많은 배우

오다기리 조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2006년 출연한 영화 '박치기!'는 일본사회가 이념갈등으로 시끄럽던 1968년 교토를 배경으로 조총련과 일본 고교생들의 싸움을 그리는데, 이 경계선에 있는 사카자키를 그가 연기했다. 박치기는 한국에서도 큰 화제를 모았는데 그에 대한 호감도도 덩달아 올라갔다.

하나 더 있다. 그는 2004년 '피와 뼈(血と骨)'에서 비트 다케시가 연기한 '재일 한국인 김준평'의 아들로 등장했다. 이 영화의 감독인 최양일씨가 재일 한국인인 것은 물론 주연 비트 다케시 역시 일본 문화계에서 지한파로 분류되는 대표적인 배우다. 오다기리 조가 나오는 씬은 얼마 되지 않지만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일본의 다수 영화제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이후 한국영화계의 러브콜을 받은 그는 2008년에는 김기덕 감독이 연출한 몽환적 영화 '비몽'에 이나영과 출연했고, 올해작 멜로 환타지 '공기인형'에선 배두나의 상대역으로 나왔다.

▶오다기리 조의 '이유 있는 4차원'

한국 남자 배우들에게는 찾아보기 힘든 '시크'한 스타일이 그에게는 살아 있다. 그는 한국 여성이 가장 선호하는 이국적인 스타일리스트 가운데 하나다. 그가 입고 나온 옷은 바로 한국에서 '오다기리 스타일' 옷으로 카피돼 유통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의 이미지는 상당부분 ‘메종 드 히미코’에서 유래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의 이미지는 상당부분 ‘메종 드 히미코’에서 유래한다.


하지만 그는 단순한 스타일리스트가 아니다. 일본 영화계에서는 4차원적인 스타일로 악명(?) 높다. 그도 데뷔 초기에는 다른 젊은 스타들처럼 곱상한 외모에 어울리는 스타일로 자신을 꾸몄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파격을 추구했다.

지금도 일본 연예계에서 회자되는 유명한 일화가 바로 그의 결혼을 전후한 파격이었다. 2007년 12월 동료배우 카시이 유우와 결혼발표 기자회견을 할 때 그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시대를 초월한 5:5 가르마도 모자라 빗질도 하지 않은 듯 머리카락이 제멋대로 헝클어져 어깨까지 내려와 있었다.

연예인이 결혼 발표를 하는 자리인데 신랑의 행색은 마치 옴진리교 교주를 연상시켰다. 깔끔한 차림으로 옆에 앉아 있던 신부 카시이 유우와는 대조적이었다.

영화 '피와 뼈'로 일본아카데미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할 당시 한쪽 머리만 잔뜩 부풀린 모히칸 스타일로 무대에 등장한 것도 화제였다. 다음해 같은 시상식에선 남우조연상을 받은 동료배우가 수상소감을 밝히면서 옆에 시상자로 서 있던 오다기리 조의 양 갈래로 묶은 머리를 보고 "수상해서 기쁜 것 보다 도대체 너 머리가 그게 뭐냐"고 농담을 할 정도였다. 자기도 멋쩍은 듯 웃음을 터뜨렸다.

이 밖에도 그는 푸들을 연상케 하는 아프로 헤어스타일에 정장을 입거나 눈 화장을 진하게 한 엽기적인 패션 감각을 꾸준히 보여 왔다. 특히 세계 영화 팬들이 지켜보는 칸 국제영화제에선 턱시도 소매를 걷고 레드카펫을 걸어서 주위를 놀라게 했다.

그는 영화 시상식 등 공식적인 자리에 등장할 때마다 파격적인 스타일로 자신의 잘 생긴 얼굴을 감춘다. 수염이 덥수룩하게 덥혀 있는가하면 여성복 같은 늘어진 옷으로 맵시를 한껏 구긴다. 다듬지 않은 듯 헝클어진 헤어스타일은 파격적이다 못해 기괴하고 때로는 지저분해 보인다.

영화 ‘박치기’의 엉뚱한 보헤미안 청년 오다기리 조.
영화 ‘박치기’의 엉뚱한 보헤미안 청년 오다기리 조.


▶스타보다 영화인이 되기를 꿈꾸는 배우

그는 무겁고 어려우며 어두운 작품들을 통해 배우로서 자신의 가능성과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스포트라이트와 팬들의 환호에 둘러 싸여 있는 스타이기를 거부한 채 엉뚱한 패션과 지저분한 모습으로 '나는 배우다'라는 메시지를 온몸으로 표출하는 것이다.

비록 '잘 생긴 배우가 왜 저런 괴상한 모습으로 나올까'라는 얘기를 들을지언정, 오다기리 조의 '이유 있는 4차원'은 그래서 빛이 난다.

그는 왜 이런 모습으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기를 자초할까. 독특한 개성을 지닌 코미디 배우라면 '튀어 보이고 싶구나'라고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꽃미남 톱스타 배우의 상상을 넘어선 엽기 스타일은 그의 정신세계까지 궁금해지게 만든다.

그 해답은 오다기리 조가 배우로서 걸어온 길을 돌이켜보면 찾을 수 있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스타보다는 영화인이 되기를 꿈꾸는 배우이기 때문에 잘 생긴 외모, 멋지고 쿨한 이미지의 틀에서 벗어나 다양한 얼굴을 가지려고 하는 것이다.

일본 영화계에서 오다기리 조는 대중성과 예술성을 적절히 오가며 다양한 작품을 선택하는 배우로 평가받는다. TV 드라마는 물론, 저예산 인디 영화라도 작품성이 좋으면 출연했다. 주연이든 조연이든 가리지 않았다.

비슷한 또래의 '잘 생긴' 일본 남자 배우들이 주로 흥행 가능성이 높은 작품에서 멋진 주인공 역할을 맡아 스타로 각광받으려는 것과는 비교된다. 실제로 오다기리 조는 그동안 일본 영화제에서 여러 차례 신인상, 조연상, 주연상을 휩쓸며 탁월한 연기력을 입증했다.

오다기리 조는 어린 시절 부모가 이혼하면서 영화관에 맡겨져 자랐다. 그는 인터뷰에서 "어릴 적 (어머니하고만 함께 했던) 고립된 삶이 사회하고 소통을 잘 하지 못하는 이미지를 형성한 것 같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때부터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꿈을 품고 미국에서 유학생활도 했다. 일찌감치 스타보다는 영화인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배우로 활동하면서 자신이 직접 단편영화의 제작과 감독을 맡기도 했다.

10년의 세월 동안 영화, 드라마로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며 필모그래피를 쌓아가는 오다기리 조에 비견할 배우로는 아시아권에서는 아마도 홍콩의 양조위 정도가 있을 것이다. 어떤 장르의 작품에서든 자신만의 고유한 매력을 녹여낸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2008년 김기덕 감독의 ‘비몽’을 위해 방한했을 당시 모습.
2008년 김기덕 감독의 ‘비몽’을 위해 방한했을 당시 모습.
▶오다기리 조, 조니 뎁, 그리고 양조위…

직업배우이자 자연인으로서 오다기리 조라는 인물과 자연스럽게 겹쳐지는 또 다른 배우가 미국의 조니뎁이다. 긴 머리를 아무렇게나 늘어뜨리고, 까칠하게 자란 수염을 깎지 않은 모습으로 멍한 듯 깊은 눈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두 배우는 같은 '과'의 인간임이 분명하다.

오다기리 조, 조니뎁, 양조위는 무심한 시선이 닮았다. 흘러가는 삶을 따뜻하지도 그렇다고 차갑지도 않게 바라보면서, 치열하지도 않으면서 삶에 밀착하는 것. 세 사람은 대개 사회적 소수자, 소외된 삶, 혹은 구원이 없을 것만 같은 극단적 상황에 내몰린 캐릭터를 맡는다. 블록버스터나 액션물에 가끔 모습을 비치기도 하지만 이보다는 생활인의 모습을 리얼하게 그린 소품에 나올때 더 깊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미드나 일드 마니아 층이 꽤 두터움에도 아직까지 한국에서 일본작품이나 일본배우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지 않다. 이러한 시장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오다기리 조가 하나의 전설처럼 국내에 적지 않은 팬들, 특히 여성 팬들을 사로잡으며 인기를 모으는 현상은 주목할 만하다.

파고들수록 더 깊은 매력이 마르지 않고 솟아나는 것, 이것이 천천히 젖어들지만 오래 여운을 남기는 오다기리 조만의 매력이고 한동안 지속될 독보적인 존재감이다.

[O2/인터뷰] 日배우 오다기리 조

▶ “내가 한국에서 인기 있다고? 그것은 미스터리…”
▶ “내 외모에 대해서 크게 만족하지는 않는다”
▶ “한국은 가장 좋아하는 외국이다”


남원상 기자 / surreal@donga.com
최영일 문화평론가 / vincent2013@gmail.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