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좋은 영화, 안 좋은 영화를 구분한다. 일반인이라면 우선 재미있는 영화가 좋은 영화일 것이다. 영화비평가라면 보다 예술성이 있으면서도 잘 만든 영화가 좋은 영화이며, 그 반대가 안 좋은 영화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냥 안 좋은 영화가 아닌 최악의 영화, 나아가 '사악한' 영화는 무엇일까? 쿠엔틴 타란티노가 찾은 답은 '나치의 선전영화'인 것 같다.
영화를 워낙 사랑해서 많은 B급 영화를 인용하여 독특하면서도 흥미로운 작품을 만들어온 쿠엔틴 타란티노는 이번엔 작심을 하고 2차대전을 일으키고 수많은 유태인을 학살했을 뿐 아니라, 독일국민들을 기만하여 전쟁으로 내몰고, 1920년대 부흥기를 이루었던 독일영화계를 황폐하게 만든 독일의 나치영화에 '불'을 지른다.
▶ 쇼샤나의 극장과 키노 작전
독일이 점령한 프랑스의 한 농가에 새로 부임한 한스 란다 대령이 방문한다. 그는 히틀러 친위부대인 SS소속으로 숨어있는 유태인을 찾아내는 명수로 알려져 있다. 예의를 갖춘 듯 하면서도 교묘하고 무서운 협박으로 결국 유태인을 숨겨주던 농부는 자백을 하게 되고 유태인 가족은 현장에서 몰살당하지만 어린 막내딸은 구사일생으로 살아서 도망간다.
바로 그녀 '쇼샤나'는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고모로부터 물려받은 영화관을 파리에서 운영하던 중, 영화광인 '프레데릭 졸러'라는 독일 병사의 구애를 받게 되는데, 그가 2백명을 넘게 죽인 전쟁영웅으로 히틀러와 당시 나치 문화장관이자 정치선동가인 괴벨스의 총애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쇼샤나에게 반한 졸러는 독일제국의 2인자이자 문화장관인 괴벨스를 설득해서 자신을 주연으로 하는 나치 선전영화인 '조국의 자랑'의 시사회를 쇼샤나의 극장에서 열게 만든다. 쇼사나는 이 기회를 이용, 극장을 불 질러 나치의 수뇌부들을 모두 몰살해버리는 복수를 하기로 결심한다.
한편 미국은 유태계 미국인들로 구성된 특공대를 조직하는데, 이들은 독일이 점령한 프랑스에서 독일군 포로를 몽둥이로 떼려죽이고 시체의 머릿 가죽을 벗겨 가는 등 독일군을 잔인하게 죽이기로 유명해 독일군 사이에 '개떼들'이라는 별명이 붙는다.
이들은 연합군의 첩자가 된 독일의 유명 여배우 '브리짓 폰 하머스마크'가 계획한, 독일 수뇌부가 참석하는 시사회를 폭파하려는 '키노 작전'에 합류하게 되고, 그 시사회가 쇼샤나의 극장으로 변경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브래드 피트는 극중에서 앵앵거리는 미국식 발음으로 관객을 웃음짓게 한다.
▶ 영화를 사랑했던 독일인들
이 영화에는 나치들 외에도 다양한 독일인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문화와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묘사되어 있다.
우선 쇼샤나에게 구애하는 프레데릭 졸러는 프랑스, 독일, 심지어 찰리 채플린의 영화에도 심취한 영화광이다. 그런데 괴벨스는 전쟁영웅이 된 그를 캐스팅해서 나치 선전 영화를 만든다.
이 영화에서 눈여겨 볼 장면들은 많지만 특히 독일 여배우 첩자 '브리짓'과 연합군이 접선하는 장면은 너무나 흥미롭고 인상 깊다.
브리짓은 조용한 장소를 골랐지만, 우연히도 새로 아기를 낳은 '빌헬름' 병장을 축하하는 일단의 독일군 병사들과 어울리게 되고, 그곳에서 독일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문학과 영화 얘기에 심취해서 술을 마신다.
빌헬름은 브리짓에게 자신의 영화 사랑을 표현하던 와중에 독일군으로 위장한 '히콕스' 영국 중위의 이상한 독일어 억양을 눈치 채게 되고, 카페에 숨어 감시하던 게슈타포 장교가 개입하여 연합군 일행은 더욱 위기에 처한다.
그러다가 게슈타포 장교가 분위기를 바꾸며 인물 알아맞히기 게임을 하게 되는데, 결국 그는 '킹콩'이라는 미국영화 주인공을 너무나 쉽게 맞춘다. 그러나 히콕스 중위의 영국식 제스쳐로 인해 위장이 탄로 나면서, 결국 피비린내 나는 총격전을 벌이게 된다.
이 장면들에서 '빌헬름' 병장이나 게슈타포 장교는 영화를 좋아하고 문화적 교양이 풍부하고 외국어도 잘하는 사람들로 묘사되어 있다. 또한 빌헬름 병장은 갓 태어난 아기에 대한 애정과 희망으로 가득한 젊은이다.
결국 이렇게 지성과 열정이 가득한 아름다운 젊은이들을 전쟁으로 내몰고, 유태인을 학살하면서도 '조국의 자랑'이라고 자부심 가득하게 만든 이들이 누구인가?
또한 1920년대에 꽃피운 독일의 표현주의 영화들을 몰아내고 오로지 광기와 인종주의에 가득찬 사악한 '선전 영화'를 양산하여 독일의 문화산업을 짓밟은 이들이 누구인가?
바로 교묘한 상징조작을 통해 게르만 우월주의와 유태인에 대한 증오를 국민들에게 주입시켜 전쟁과 광기로 내몬 히틀러와 나치주의자인 것이다.
잔인하면서도 유쾌한 영화 ‘바스터즈’.
▶ 나치의 상징조작과 영화
사실 이 영화에서 독일군들이 '개떼들'이라고 부르는, 머릿 가죽을 벗기거나 몽둥이로 머리를 부수는 미국군의 '만행'은 픽션일 뿐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2차대전은 단순히 무력간의 충돌일 뿐 아니라 연합군과 독일연맹군간의 치열한 이데올로기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만일 미군이 이런 만행을 했고, 그 증거가 독일군에게 포착되었다면 독일에게는 반미주의를 확산시키는 엄청난 선전거리가 되어 오히려 독일국민과 나치들의 피를 끓게 만들어 사기를 높여줬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타란티노가 만든 이런 과장된 행동들은 모두 극우적 민족주의에 물든 나치의 '머리통'을 철저하게 까부수고 싶은 분노에 가득 찬 마음을 극적이면서도 희화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영화 곳곳에 있는 SS부대와 게슈타포의 장면들은 대단히 상징적이면서도 나치즘의 본질을 잘 말해주는 것 같다.
나치는 독일국민들을 앞으로는 선전선동하면서, 뒤에서는 SS요원, 비밀경찰 게슈타포를 이용해서 철저하게 감시, 협박함으로써 국민들을 이용해 2차대전을 일으키고 그들의 제국을 건설하는데 동원했다.
그들은 나치의 제복, 깃발, 나치문양 등 다양한 '상징조작'을 통해서 국민들을 이용했는데 그 중에서도 '영화'는 TV가 없던 당시에 가장 큰 오락거리이면서도 국민들을 선동하는 대중매체였던 것이다. 괴벨스는 바로 이런 영화를 이용하여 무수한 전쟁영웅들을 만들고 이를 국민들이 숭배하고 추종하도록 만들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다양하면서도 화려한 나치 제복들은 나치가 국민들이 군대를 동경하도록 만든 대표적인 상징의 하나였다. 특히 프레데릭 졸러가 시사회에서 입은 화려한 군복은 나치 제복의 백미를 보여주는 것 같다.
결국 이런 나치 영화는 2차대전의 패배와 나치즘의 몰락으로 사라졌지만, 구소련과 동구권에서는 여전히 영화가 이런 상징조작과 정치선전의 수단으로 활용됐다.
동구권 몰락 이후 이런 전통이 막을 내렸으니, 이제는 북한만이 유일하게 아직도 영화를 정치선전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김정일이 영화광인 이유는 바로 이런 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영화 곳곳에서 다양한 재미를 발견 할 수 있는 ‘바스터즈’.
▶ 영어, 독일어, 불어, 이태리어
이 영화의 가장 큰 볼거리는 여러 개의 국어로 표현되는 말의 잔치다. 특히 크리스토프 발츠가 열연한 '란다' 대령은 독일어, 영어, 불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뿐 아니라, 시사회장에서는 이태리어까지 능란하게 구사해서 이태리인으로 위장한 '개떼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또한 재미있는 점은 쇼사나가 프랑스와 유태인을 대표해서 나치들에게 최후의 복수를 준비했다면, '브리짓 폰 하머스마크'는 (연합군의 힘을 빌지만) 독일영화계를 대표하여 나치들에게 복수를 준비한다. 즉 독일영화계를 나치 영화들로 황폐화시킨 나치들에게 복수를 기획하고, 미군들은 '독일영화 기사들'로 위장해 참가하게 된다.
그런데 재밌게도 미군이 독일어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태리' 사람들로 위장하는데, 이는 이들의 복수극이 나치즘으로 고통 받고 영화계가 황폐화된 모든 국가들의 응징이라는 의미를 부각시키는 것 같다.
쇼사나가 극장에 불을 지르는 장면도 흥미로운데, 영화가 상영중인 스크린 뒤에서 가연성이 높은 니트로 필름들을 쌓아서 불을 지르지만 이것은 '사악한' 나치 영화들을 모조리 불사르는 상징적인 표현이다. 여기에는 쇼샤나의 애인이자 영화기사인 흑인 '마르셀'도 참가하는데 나치즘의 인종차별주의에 대한 통쾌한 보복의 극치다.
결국 이 영화에서 히틀러, 괴벨스 그리고 영화를 통해 국민들을 나치즘으로 몰았던 나치 일당들은 영화관에서 자신들이 만든 영화를 자화자찬하면서 보다가 유태인, 프랑스인, 흑인, 독일영화인, 미국인들로부터 처참한 몰살을 당한다. 물론 픽션이긴 하지만 유쾌하면서도 통렬한 타란티노식 복수인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전쟁영웅 프레데릭 졸러는 시사회 도중 비장한 복수를 준비 중인 상영실로 쇼샤나를 찾아가 무리한 구애를 하는데, 결국 쇼샤나는 "당신은 'NO'의 의미를 모르는군요."의 한마디를 남기고 졸러를 총으로 쏴 죽이고 자신도 졸러의 총에 죽게 된다.
이 장면은 한편으로 예술의 나라 '프랑스'를 점령하고 회유, 협박으로 독일제국으로 끌어들이려고 한 '독일'에 대한 명쾌한 응징을 상징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 다양한 영화를 인용하고 접목한 타란티노식 전개
타란티노의 영화는 다양한 영화들을 인용하고 비트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영화에도 마카로니 웨스턴의 음악을 많이 작곡한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을 활용했고, 특히 주인공 '알도' 중위의 남부 사투리식 억양과 화법, 그리고 개떼들의 무자비한 행동들은 미국의 갱스터 무비를 연상케 한다.
따라서 이 영화는 마카로니 웨스턴, 미국 갱영화와 전통적인 2차대전 영화를 접목한 인상을 풍기며, 심지어 '뿌리'나 '킹콩'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씬도 등장할 뿐 아니라, 독일의 파브스트, 리펜슈탈 등 독일의 20년대 표현주의 영화감독들도 많이 거론되는 등 영화의 역사를 꿰뚫는 듯한 인상을 준다. 심지어 영화관이 불에 휩싸이는 장면은 언뜻 '시네마천국'도 연상하게 한다.
결국 철저한 영화광이자 영화 예찬론자인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자신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면서도 독일국민과 영화를 황폐화시키고 유태인을 학살한 사악한 나치즘과 나치영화에 대한 깊이 있는 해부와 철저하면서 통쾌한 복수를 이루어냄으로써, 단순한 상업영화의 재미를 넘어서 향후에도 두고두고 분석하고 음미할 수 있는 걸작 영화를 만들어 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