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시나리오 좋다면 내 돈 내고도 찍는다”

  • 입력 2008년 10월 22일 07시 51분


작품성-상업성 사이서 아슬아슬 줄타기

완성된 지 4년 만에 개봉한 영화 ‘사과’. 제작사와 배급사의 이해관계 때문에 조금씩 늦어지더니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한적한 오후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김태우는 첫 마디를 “감독에게 축하해줬다”고 말했다.

김태우와 동갑내기로 촬영하며 친구가 된 강이관 감독은 해외 영화제에서 폭발적인 관심을 받은 데뷔작 ‘사과’를 완성했지만 4년 동안이나 야인생활을 했다.

“저도 가슴 아팠지만 어디 강이관 감독과 비교가 되겠어요? 배우들이야 다른 작품하면 또 잊게 되고 그럴 수 있잖아요. 감독은 얼마나 가슴 아팠겠어요. 그래도 몇 해 전에 찍은 티 안나죠?”

‘10년이면 강산이 서너 번은 바뀐다’고 하는 요즘, 4년은 꽤 긴 시간이다. 하지만 김태우의 말처럼 ‘사과’에서 과거의 흔적은 단 몇 장면. 공사 중인 서울 청계천과 지금은 구형이 된 휴대폰 정도다.

김태우는 “필름이 나이를 먹지 않았다”고 표현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마지막으로 영화를 보고 한 2년 만에 다시 본 것 같아요. (시사회에서) 솔직히 걱정도 많이 했는데 필름이 나이를 전혀 먹지 않아 기뻤습니다. 강이관 감독에게도 ‘이야, 너 영화 진짜 잘 만들었다. 나이 먹은 테가 안나’ 그러면서 축하해줬죠.”

김태우는 4년 전 촬영한 작품이지만 영화와 감성과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의 느낌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또한 당시 스스로 맡은 캐릭터의 성장과정과 성격, 이혼위기 까지 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정해 연기했던 것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김태우 본인이 밝히는 실제 성격은 “직설적이기도 하고 화통한 면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사과’ 속 남자는 착하고 순진하고 배우 김태우의 가장 전형적인 캐릭터다.

“후배 연기자들이 딱 형이야. 무슨 ‘인간극장’ 보는 것 같았어 그렇게 놀리더라고요. 진짜로는 그렇게 답답한 사람은 아닙니다(웃음)”

김태우는 작품성과 상업성의 경계에 서 있는 배우로 평가받고 있다. 시나리오가 좋다면 오히려 경비까지 자신이 부담하는 마이너스 개런티도 불사하는 국내에 몇 안 되는 배우다.

‘최근 작가주의 영화 쪽에 많이 치우친 것 같다’고 하자 김태우는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어느 한쪽만 고집할 마음 없다. 무조건 시나리오가 좋은 영화에 출연하는 게 내 원칙이다. 개런티도 그렇다. 사람들이 가끔 오해를 한다. ‘홍상수 감독 영화는 적은 개런티를 감수하니까 우리 영화도 이 정도 받으면 안 되겠냐?’는 말에 출연을 거절한 적도 있다. 워낙 저예산이라 개런티를 안받고도 출연했지만 상업영화는 다르다”

‘사과’는 웃음과 눈물이 잘 조화된 잘 만든 영화였지만 4년간 창고에 있었다. 김태우는 ‘사과’를 통해 두 가지를 배웠다고 했다.

“필름 깡통에만 있을 때는 아직 영화가 아니었어요. 관객을 만나야 그게 영화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어요. 제 직업이 영화를 만드는 여러 가지 분야 중 하나잖아요. 그 구성원으로 더 열심히 뛰어야 할 때구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작품성과 상업성의 경계에 있는 이 배우는 11월부터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되는 연극 ‘갈매기’무대에 선다. 그리고 ‘사과’에 이어 주지훈, 신민아와 호흡한 영화 ‘키친’ 개봉도 앞두고 있다. 또다시 작품성과 상업성의 절묘한 경계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사진 =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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