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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7월 26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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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의 2일(2 days in Paris)’이라는 원제 대신 왜 ‘뉴욕에서 온 남자, 파리에서 온 여자’라는 한국판 제목을 붙였는지는 영화를 10분만 보면 금세 이해가 된다. 쉴 새 없이 부딪치는 연인, 프랑스 여자와 미국 남자가 빚어내는 문화 충돌은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그대로 스크린으로 옮겨 놓은 듯하니까.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성장한 연인이 ‘낭만의 도시’ 파리에서 겪는 갈등을 섹스를 소재로 삼아 과장스럽지만 깔끔하게 그려냈다.
20일 개봉한 이 영화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여름 공포물의 틈을 비집고 13개 개봉관에서 상영 중인 유일한 로맨틱 코미디.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으로 알려진 여배우 줄리 델피가 연출과 감독, 주연, 각본, 편집, 작사 등 6개 부문에서 맹활약한 이 영화는 개봉 첫 주 15만여 명의 관객을 모았다. 델피의 장편영화 데뷔작인 이 영화는 올해 베를린영화제 파노라마 부문에 진출하기도 했다.
베네치아 여행을 마친 잭과 마리옹은 마리옹의 부모가 있는 파리에서 이틀간 쉬기로 한다. 그러나 테러가 무서워 대중교통 대신 택시만 고집하고, 화장실의 곰팡이를 보고 난리 법석을 부리는 ‘미국산 소심남’ 잭에게 파리는 낭만은커녕 악몽 같은 곳이다.
몸이 안 좋아 입에 체온계를 물었더니 프랑스에서는 항문용 체온계를 쓴다고 하고, 병원에 가려고 하니 간호사들이 파업이란다. 마리옹의 부모는 섹스를 하는 도중에도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질 않나, 심지어 잭의 나체 사진을 구해 와 웃음거리로 만든다. 잭이 가장 참기 힘든 것은 그동안 알지 못했던 파리 여자 마리옹의 진면목과 거리에서 불쑥 만나는 마리옹의 옛 애인들. 마리옹은 남녀가 헤어진 후에도 친구로 남을 수 있다며 옛 ‘남친’들과 섹스에 대한 농담을 주고받기도 한다.
이 영화의 매력은 진부할 수도 있는 ‘소심남’ ‘과감녀’라는 이분법적 갈등 관계를 톡톡 튀는 대사로 맛있게 처리한 점이다. 낡은 화장실의 곰팡이를 보고 난리를 피우는 잭에게 “치즈에 쓰는, 몸에 좋은 음식”이라며 응수하는 마리옹과 작은 프랑스 콘돔을 보고 “프랑스는 어린이용 콘돔도 있느냐”며 투덜대는 잭의 실랑이는 과장됐지만 유쾌한 웃음을 선사한다.
처음 만난 남녀가 티격태격하며 연인으로 발전한다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설정 대신 2년 된 ‘중고 연인’이 이별 직전까지 간다는 스토리도 신선하다. 미국에서 10여 년간 활동한 프랑스 여배우 델피는 미국과 프랑스의 문화적 차이를 짚어 내는 데는 성공한 반면 남녀의 심리를 포착하는 데는 아쉬움을 남겼다. 이 영화의 감초 역할을 한 마리옹의 부모는 실제로 델피의 부모. 18세 이상.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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