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우리 엄마는 식당 아줌마 아닐거야”…‘열세 살, 수아’

  • 입력 2007년 6월 7일 03시 00분


여배우는 그렇게 창조됐다.

로제 바딤 감독의 1956년 작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는 브리지트 바르도라는 무명의 앳된 여배우를 단숨에 섹시 아이콘으로 만들어 낸 작품으로 유명하다. 14일 개봉하는 김희정 감독의 장편 데뷔작 ‘열세 살, 수아’는 어쩌면 그 반대에 서 있는 영화다. 이세영이라는 여자 냄새 물씬 풍기던 아역 스타를 단숨에 딱 그 또래의 열세 살 사춘기 소녀로 돌려놨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세영이란 이름은 기억 못 해도 TV 드라마 ‘대장금’에서 야무지고 똑 소리 나는 어린 금영과 영화 ‘여선생 vs 여제자’에서 초등학생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뇌쇄적 미모’로 미스코리아 출신 염정아를 주눅 들게 하던 그 여제자를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열세 살, 수아’에서 그녀는 너무도 평범한 외모와 속내를 알 수 없는 무표정한 연기로 대한민국 로틴(low teen)을 대표할 만한 초상을 그려냈다.

초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는 수아는 2년 전 아빠를 잃고 시장판에서 식당을 하는 엄마(추상미)와 둘이 산다. 말 없는 소녀가 된 수아는 아빠가 남긴 일기를 읽고 자신의 출생에 얽힌 비밀을 알게 된다. 자신이 엄마의 친딸이 아니라 유명 가수 윤설영(김윤아)의 딸이라는. 일상의 무게를 짊어지기도 힘들어 딸의 졸업식에도 빠지는 엄마에 대한 불만은 윤설영이라는 판타지를 통해 더욱 커져 가고 급기야 그녀의 콘서트를 보러 가기 위한 가출로 이어진다.

이 영화의 미덕은 수아의 방황이 아니다. 그 방황의 궤적 속에 포착된 리얼리티의 승리다. 억압적 학교 폭력과 누추한 원조교제, 동성애를 향해 비죽이 틈이 열린 여학생 간 우정, 어렴풋이 눈떠 가는 이성에 대한 불편함…. 영화 곳곳에 담긴 이런 로틴의 일상은 그들에 대한 애정 없이는 불가능한 장면들이다. 무엇보다 홍역과 같은 성장통 끝에 같은 여자로서 엄마에 대한 이해와 사랑에 도달하는 마지막 장면의 감동을 만끽하기 위해서라도 놓치지 말아야 할 올해의 영화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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