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해방공간의 언론' …좌익 언론인들이 贊託 주도

  • 입력 2003년 12월 22일 18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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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석 교수
정진석 교수
1945년 8월 광복 이후 6·25전쟁 전까지 5년 사이에 암살당한 정치인 4명 가운데 김구(金九)를 제외한 3명이 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언론인이다. 이 시기에 차례로 흉탄에 쓰러진 민족 지도자는 송진우(宋鎭禹) 여운형(呂運亨) 장덕수(張德秀) 김구 선생이었다.

송진우는 3·1운동을 이끈 48인의 하나로 투옥되었다가 출옥한 뒤 1921년 9월부터 1945년 12월 30일 암살당할 때까지 세 차례나 동아일보의 사장을 맡았다. 그는 김성수(金性洙)와 함께 일제강점기의 어려운 상황에서 옥살이를 감내하며 동아일보를 이끈 쌍두마차의 한 쪽 말에 비유된다.

1947년 7월 19일 암살당한 여운형은 민간 3대신문의 하나였던 조선중앙일보의 사장이었다. 그는 상하이에서 일본경찰에 체포 압송돼 7년형을 선고받고 대전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1932년에 출옥한 뒤 조선중앙의 사장에 추대되었다.

장덕수는 1920년 4월 동아일보 창간 때 논설주간으로 창간사를 집필하는 등 초기 민족 언론의 초석을 다진 인물 중 하나였다. 광복 뒤에는 동아일보 이사로 참여하면서 주로 정계에서 활약하며 대한민국 정부수립에 헌신하던 중 1947년 12월 2일 자택에서 괴한의 흉탄에 쓰러졌다. 친형 장덕준(張德俊)은 동아일보 창간 논설위원으로 간도의 독립군을 취재하러 갔다가 일본군에 피살된 우리나라 최초의 순직기자였다.

광복 후 언론계는 이른바 진보적 민주주의를 표방한 좌익들이 기선을 장악했다.

미군이 서울에 진주하기 전날 가장 먼저 나타난 좌익신문 조선인민보는 일제 패망 직전까지 조선총독부의 일본어 기관지 경성일보에 종사하던 이들이 창간했다. 동아, 조선일보가 강제 폐간 당한 뒤 유일한 우리말 신문으로 침략전쟁의 주구노릇을 하던 매일신보의 사원 가운데 좌익들은 권력의 공백을 틈타 사원자치위원회를 주도하면서 경영권을 요구하는 상황이었다.

조선공산당 중앙위원회 기관지 해방일보는 동아, 조선일보의 복간에 앞서 9월 19일 창간됐다. 해방일보는 창간호부터 우익 진영을 격렬하게 비난하는 선전 선동의 무기였다. 해방일보가 지탄하는 최대 표적은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친 이승만과 김구였다.

‘이승만, 김구의 매국적 흉계를 보라!’(1946년 3월 3일)를 비롯하여 이승만과 김구를 “히로히토(裕仁)와 도조(東條)의 재현”으로 표현한 민전(民戰)의 담화를 싣고, 같은 지면에 박헌영(朴憲永)의 ‘반동 두목의 고립화만이 공위(共委) 속개, 독립을 촉진’(1946년 6월 13일)을 머리기사로 다루었다.

러시아 모스크바 3상회의 결과가 알려진 뒤 신탁통치와 반탁으로 온 나라가 들끓었던 시기, 민족의 지도자들이 흉탄에 쓰러지던 폭력과 암살의 혼돈기에 북한 정권을 열렬히 지지하고 우익의 분열을 선동하던 홍증식(洪植) 권오직(權五稷) 임화(林和) 홍남표(洪南杓) 김광수(金光洙)와 같은 투쟁적인 좌익 언론인들은 목숨을 걸고 공산당의 논리를 전파했다. 북으로 가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는 등 한때 권력의 중심까지 접근하였으나 오래지 않아 무자비한 권력 투쟁의 제물이 되어 김일성에게 숙청당했다. 그들은 미 제국주의의 앞잡이, 스파이, 또는 종파 분자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쓰고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북한의 언론사는 그들의 이름조차 말살하고 말았다.

6·25전쟁 중에 피살 또는 납북된 남한의 언론인은 241명(피살 34, 납북 207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는 납북 방송인 26명과 피살된 1명이 포함돼 있다. 세계 언론사상 유례없는 언론인의 집단적인 참극이다.

광복 직후 민족의 지도자들이 흉탄에 쓰러지던 폭력과 암살의 혼돈기를 거쳐 남북의 골육상잔을 경험하면서 반세기 넘도록 이어진 체제 경쟁은 자유민주주의 나라인 남쪽의 완승으로 판가름이 났다.

그러나 아직도 국민을 현혹하는 현란한 구호와 교묘한 논리로 역사를 정치 투쟁의 도구로 악용하는 무리들이 언론과 정치, 문화계를 장악해 좌경화하려는 음모에 가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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