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균 차장 ‘자기 말’ 벌써 잊었나

  • 입력 2003년 8월 24일 18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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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의 발언은 그의 조직 내 위치를 감안할 때 개인 자격으로 말했다고 볼 수 없다. 기사의 문면을 보면 의도를 갖고 발언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국가신인도를 떨어뜨리는 발언이다.”

정순균(鄭順均.사진) 국정홍보처 차장이 대통령직인수위 대변인으로 근무하던 1월 11일. 그는 “인수위의 목표는 사회주의적이다”는 당시 전국경제인연합회 김석중(金奭中) 상무의 인터뷰 내용이 보도된 뉴욕 타임스 기사(1월 10일자)와 관련해 강한 어조로 이렇게 비판했다.

그랬던 정 차장이 22일자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에 한국 언론과 기자를 비하하는 내용의 기고문을 실어 올 1월과는 정반대로 그 자신이 ‘파문의 주역’이 되자, 정부측이 어떤 조치를 내릴지에 정치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석중 파문’ 때는 김 상무 본인이 발언 내용을 부인했고, 전경련측도 “전경련과 무관하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인수위측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며 연일 강경 대응했기 때문.

결국 전경련은 1월 13일 당시 김각중(金珏中) 회장 명의로 “김 상무의 인터뷰 기사로 물의를 일으켜 송구스럽다. 앞으로 정부 정책에 협조하겠다”는 내용의 공식 해명서를 인수위에 직접 전달하며 ‘백기’를 들었다. 정 차장은 당시 “인수위는 전경련의 정중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면서도 “전경련의 ‘성의 있는’ 조치를 기대한다”고 말해 ‘김 상무에 대한 추가 조치’를 요구했다. 이에 전경련측은 “김 상무 본인이 발언 내용을 부인하는데 인사 조치까지 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보였으나, 결국 3월 14일 조직 개편과 임원 인사를 하면서 김 상무를 전경련 산하 모 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으로 사실상 좌천시켰다.

2월 12일 국회 본회의에서 야당 의원들이 이에 대해 “인수위가 그렇게 강압적인 사과를 받아내도 되느냐”고 따지자, 고건(高建) 국무총리는 “보도대로라면 적절치 못하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정 차장은 22일 이번 파문과 관련해 “물러날 이유가 된다면 사임하겠다”고 말했지만, 24일 현재까지 청와대나 정부측의 추가 조치는 없는 상태이다.

한나라당 송태영(宋泰永) 부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정 차장은 ‘번역의 오류’라고 변명했지만,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뤄볼 때 ‘계획적인 언론 매도’라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며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직접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전경련 김석중 상무 NYT 파문과 정순균 차장 AWSJ 파문 비교

김석중 상무의 ‘NYT 인터뷰’ 파문 정순균 차장의 ‘AWSJ 기고문’ 파문
문제의 보도 내용-“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경제정책에 관한 한 매우 위험할 수 있다. 그들은 경제 체제의 급격한 변화를 원한다. 그들의 목표는 사회주의적이다” (NYT 1월10일자)-“많은 한국 기자들은 1차적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기사를 쓰는 경향이 있다. 각 정부 부처는 영향력 있는 기자들에게 술 과 식사를 대접하며 정기적으로 돈 봉투 를 건네고 있다”(AWSJ 8월22일자)
본인의 해명-“‘새 정권은 사회안전망(social safety net) 확충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을 뿐 사회주의자(socialist)란 말은 사용 한 적이 없다” (1월12일, 김 상무의 해명 기자회견)-“김 상무의 발언이 전경련 공식입장과 는 관계없다”(1월12일, 전경련측)-“본의가 아니었다. 기고문이 번역된 뒤 해 외홍보원 외신과장이 최종 판단해 송고했 고, 나는 신문에 실릴 때까지 못 봤다. 언 론인의 명예를 훼손한 점에 유감의 뜻을 표한다. 물러날 이유가 된다면 사임하겠 다”(22일 오후, 정 차장의 해명 기자회견)
사후 조치-전경련, 김각중 회장 명의의 해명서를 인수위에 직접 전달(1월13일)-손길승 신임 전경련 회장, 노무현 대통 령 당선자에게 직접 유감 표명(2월10일)-김석중 상무, 전경련 산하 경제연구원 으로 전보 조치(3월14일)?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與주류도 “鄭 즉각 파면”▼

“일선 기자들에게 모욕을 줘 그들을 모두 적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냐.”

정순균(鄭順均) 국정홍보처 차장이 한국 언론과 기자를 비하하는 내용의 글을 아시안 월스트리트저널(AWSJ)에 기고한 데 대해 민주당 주류측 의원들 사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신당 추진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주류측 한 의원은 24일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져 대단히 유감스럽다”며 “정 차장을 즉각 파면해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언론정책이 불필요한 오해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그는 이미 개인적으로 청와대측에 파면을 건의했다면서 노 대통령과 참여 정부의 언론 정책은 권력과 언론간의 건강한 긴장관계를 유지하자는 것이지, 기자들을 적대시하려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다른 중진 의원은 “(노무현 정부에 대한) 국제 사회의 비판이 있으면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야지 일일이 대응해서야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기자 출신인 김성호(金成鎬) 의원은 “선진국의 언론도 과거엔 부끄러운 모습이 있었고,우리 언론도 부끄러운 모습이 있었지만 차차 발전해가고 있다”며 “정 차장의 기고는 한국 언론에 먹칠을 한 것”이라고 지적한 뒤 “그러나 본인이 사과한 만큼 경질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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