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칸다하르', 푸른 하늘아래 펼쳐진 잿빛 절망

  • 입력 2002년 2월 21일 17시 11분


영화 ‘칸다하르’는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치하의 절망적 상황에 대한 영상 보고서다.

이란의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이 연출한 영화는 주인공 나파스(닐로우파 파지라)가 아프간 칸다하르로 ‘잡입’하는 과정에서 겪는 참담한 현실을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쫓아간다. 그런데 그 다큐는 고운 황토빛의 황무지,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 색색의 아프간 전통 의상 등 회화적 색채의 영상으로 형상화돼 절망적 현실을 극적으로 대비시킨다.

주연을 맡은 파지라는 아프간 내전때 조국을 탈출해 캐나다에 정착한 실존 인물로 칸다하르에 사는 단짝 친구(영화에서는 동생) 다이아나가 절망을 끝장내기 위해 자살하겠다는 편지를 보내자 이를 만류하기 위해 아프간으로 간다. 영화는 이런 실화를 기초로 한 픽션이다. 다만 파지라는 실제로 아프간에 들어가지 못했고 마흐말바프 감독이 파지라를 주연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파지라의 눈에 비친 아프간은 거대한 절망의 덩어리다. 부르카에 덧씌워진 여성, 코란이 곧 빵인 종교적 교조주의, 의족을 팔아 연명하는 불구자들 등.

영화의 압권은 지뢰에 한쪽 다리을 잃은 이들이 국제구호단체가 하늘에서 던져준 의족을 잡으려 뒤뚱거리며 뛰는 장면. 마흐말바프 감독은 이 군상(群像)의 뒤뚱거림을 잔인하리만큼 차분하고 섬세하게 보여준다. 눈동자의 움직임이나 애처로운 표정, 우스꽝스러울 만큼 규칙적인 절룩거림 등.이로인해 이 장면은 ‘과잉 연출’이라는 지적도 받는다.러닝 타임 85분간 현실을 고발하는 일화를 나열하는데 그쳐 이야기를 하다만 듯하다. 기승전결의 극적 코드를 가진 드라마나 웅장한 볼거리는 없으나 끝난 뒤에도 관객을 곧장 일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흡인력은 감독의 냉정한 시선 덕분이다. 이 영화는 유네스코 페데리코 펠리니상, 몬트리올 누보시네마 여우 주연상 등을 받았다. 전체관람가. 3월1일 개봉.허 엽기자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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