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안방극장 '공포·엽기 잔치'

  • 입력 2001년 8월 15일 18시 38분


올 여름도 안방극장은 ‘공포’ ‘엽기’ ‘가학’ ‘선정성’ 논란으로 뜨겁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시청률 경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말초적인 신경을 자극하는 화면’을 잇따라 내보내고 있는 것.

오락 프로그램들은 공포 체험 코너를 또다시 등장시켰고, 건강을 빌미로 연예인을 생체실험의 ‘마루타’ 다루듯 하고 있다. 드라마의 경우도 피가 튀는 잔인한 장면이나 어른들이 보아도 낯뜨거운 장면이 등장하고 있다.

◇공포 소재 코너 '재탕'

SBS ‘초특급 일요일 만세’(오후 6·00)의 ‘조용한 가족’ 코너는 12일 방영분에서 흉가를 찾은 미스코리아 출신 손태영이 땅 속과 뒤에서 연이어 등장하는 귀신과 갑자기 터지는 폭죽에 경악하는 모습을 몰래 카메라로 담았다.

이 형식은 97년 KBS ‘슈퍼선데이’의 ‘공포체험 돌아보지마’, 지난해 SBS ‘슈퍼 스테이션’의 ‘도전 흉가의 비밀’과 흡사한 기획물.

◇건강보감은 '가학'보감?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오후 6·10)의 ‘건강보감’은 한방 의학을 소개하면서 출연자들을 실험 대상으로 삼아 가학적인 웃음을 만들어낸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12일 ‘건강보감’ 코너는 ‘중풍’을 소개하며 김용만 이경규 등 패널을 대상으로 침을 놓고 부황을 떴다. 이어 중풍에 좋은 음식을 내 놓으면서 이경규가 천에 가려져 있는 도마뱀을 만지도록 유도했다. 큰 도마뱀을 이경규가 만지다 놀란 표정을 짓자 나머지 패널들이 박장대소하는 장면은 웃음을 자아내기 보다는 섬뜩한 느낌을 주었다.

‘일요일 밤에’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 네티즌 황상현 씨는 “중풍으로 쓰러진 응급 상황에서 온몸을 장난스럽게 문지르는 행동은 시청률에 급급해 건강상식을 왜곡시키는 행태”라고 비판했다.

◇'엽기 왕건' VS '야한천하'

KBS ‘태조 왕건’(토일 밤 9·45)과 SBS ‘여인천하’(월화 밤 9·55)도 엽기적이고 선정적인 화면으로 시청자들의 빈축을 사고 있다.

‘태조 왕건’은 12일 조물성 전투에서 금강이 화살에 박힌 자신의 눈을 먹는 장면을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아무리 실감나는 장면을 위한 것이라 해도 유혈이 낭자한 눈알을 삼키는 장면은 정도에 지나쳤다는 지적이다.

SBS ‘여인천하’는 6일 정난정과 윤원형이 첫날밤을 치르는 장면이 문제가 됐다. 두 사람이 서로 더듬고 상반신이 거의 드러나는 등 에로 비디오가 연상될 정도로 애정 장면을 상세하게 묘사했다.

방송 모니터 모임 ‘매체비평 우리 스스로’의 곽윤정 간사는 “오락 프로그램은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려는 노력보다 공포극 등 구태의연한 기획을 답습하는 게 문제”라며 “역사적인 사실에 기반해야 하는 사극도 시청률 경쟁을 치열해지면서 표현수위가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고 평가했다.

<황태훈기자>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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