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 'TV문학관-길은…', 욕망과 순리 두가지 삶 비교

  • 입력 2000년 3월 2일 20시 14분


‘인터넷 금맥’을 향한 질주의 시대. 인생의 가치는 그 ‘엘도라도’로 좇아가는 것에 있는 것일까? 5일 방영하는 KBS2 TV의 ‘TV 문학관-길은 그리움을 부른다’(밤 10시)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주인공 박석우(박진성 분)는 “욕망을 향해 달음질치는 인간과 순리에 순응하는 인간 중 정작 세상을 만드는 사람은 후자”라고 암시한다.

‘길은…’은 96년 11월 교통 사고로 사망한 소설가 이균영의 원작 ‘나뭇잎들은 그리운 불빛을 만든다’를 극화한 드라마. 역사학자이기도 했던 이균영은 인간의 따스한 감성으로 현대 문명의 어둔 이면을 들춰온 작가.

이 드라마는 그 휴머니즘을 영상에 옮겼다. 이야기는 초로의 기관사인 석우가 하룻동안 석탄 수송차를 몰면서 자신의 일생을 되돌아보는 것으로 전개된다. 석우와 함께 살아온 옥순과 아진은 각각 ‘욕망’과 ‘순응’의 상징. 꿈을 이루기 위해 석우를 떠난 옥순 역은 김혜리가, 석우에게 무조건 “좋다”고만 말하는 여성 아진 역은 송채환이 각각 맡았다.

석우는 바보스러울 정도로 주어진 환경에 순응한다. 철로는 그에게 주어진 순리의 인생길. 석우는 철로를 타고 고향을 벗어났지만, 결국 철로를 타고 고향으로 되돌아온다. 석우가 극 중에서 “철로는 늘 앞으로 가지만 제자리로 돌아온다”고 읊조리는 대목은 많은 인생들의 단면을 나타낸다. 영화 ‘박하사탕’에서 주연 설경구가 철로 위에서 ‘되돌아가고 싶다’고 외치는 장면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TV 문학관은 연기자의 표정 하나하나와 배경 묘사가 원작의 수 백 단어를 축약하기 때문에 연기력과 연출력이 관건. 주연 박진성은 20대 초반부터 30여년 간의 배역을 맡으면서 흔들림없는 연기를 보여준다. 베테랑인 장기오 PD는 군데군데 따스한 휴머니즘이 스며 있는 장면을 메웠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디지털의 관점에서 보면 ‘촌’스럽다. 극의 전개도 빠르지 않다. 특히 석우의 캐릭터는 어떤 점에서는 무능해보인다. 악착같이 꿈을 이루는 옥순에 대한 평가도 21세기 벽두에는 긍정적일 수 있다. 시청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자못 궁금하다.

<허엽기자>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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