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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1월 27일 19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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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화 상영시간이 점점 길어지는 경향에 대해 미국 영화주간지 ‘할리우드 리포터’가 내린 진단이다.
1924년 에리히 폰 스트로하임 감독(1885∼1957)은 회심의 역작인 ‘탐욕’을 4시간20분짜리로 만들었지만 MGM 영화사는 이 영화를 개봉하면서 2시간20분짜리로 잘라버렸다. 이는 미국 영화사에서 ‘산업’에 대한 ‘예술’의 패배로 간주된 사건.
그러나 이번 겨울 잇따라 개봉되는 할리우드 영화들은 거의 2시간20분을 넘는다. ‘마그놀리아’(3시간8분), ‘그린 마일’(3시간), ‘애니 기븐 선데이’(2시간40분), ‘인사이더’(2시간35분), ‘타이터스’(2시간40분)…. 이는 스트로하임의 복수가 아니겠느냐는 것이 ‘할리우드 리포터’의 익살맞은 해석.
‘긴 영화’가 두드러지게 많아진 건 1998년 ‘타이타닉’(3시간14분)이후부터.
1999년 미국에서 개봉된 영화 중 상영시간이 2시간20분 이상인 영화는 20편. 반면 1989년에는 4편, 1979년에는 8편에 불과했다. ‘조 블랙의 사랑’(3시간)처럼 긴 영화는 흥행에도 불리하다. 그런데도 자꾸 길어지는 이유는 뭘까?
미 영화주간지 ‘버라이어티’ 최근호도 비슷한 주제의 특집기사를 싣고 ‘이는 치열한 아카데미 수상 경쟁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쉰들러 리스트’(3시간5분), ‘간디’(3시간8분) 등 역대 아카데미 수상작들은 길고 심오해보이는 영화가 수상에도 유리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음 이유는 멀티플렉스(복합상영관)의 증가. 1개 극장의 상영관이 5개 안팎이었던 초기의 멀티플렉스는 하루 3, 4회 밖에 상영할 수 없는 긴 영화를 기피했지만, 요즘 미국의 멀티플렉스는 1개 극장의 상영관이 20개 안팎에 이르러 긴 영화들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상영시간이 늘어난만큼 영화가 더 풍부해졌는지에 대해선 부정적인 평가가 많다. ‘버라이어티’는 “짜임새 있는 영화의 신봉자였던 알프레드 히치코크 감독이 살아있다면 요즘 추세에 분개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