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만의 뒤집어 보기]40代는 싫어

  • 입력 1999년 6월 27일 19시 01분


나도 40대다. 그래도 난 40대가 싫다. 동년배인 40대들에게 행여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혀도 할 수 없다. 40대, 그들은 대개 10대들을 자녀로 두었다.

“그게 바로 너였어?”

마흔 중반을 넘긴 동창녀석들은 내가 ‘H.O.T’를 매니지먼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우선 놀란다. 그 다음은 10대, 바로 자기 자녀를 망치고 있는 원흉아 바로 나인듯이 몰아세우기 시작한다.

나는 의레 “우리도 머리 길러봤잖아”로 반격을 시작한다. 나와 친구들은 개그맨 전유성씨가 낸 책 제목처럼 ‘하지 말라는 것은 다 재미있던’ 시절을 거쳐 기업체 사장도 되고 교수도 되었다. 대개 71학번인 동기생들은 장발단속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그 끔찍한 경험들을 공유하고 있다. 내 머리 내 맘대로 하지 못하는 세상에 대고 얼마나 ‘욕’을 퍼부었던가.

내 말이 길어질라치면 “그건 머리지”라는 주장이 튀어나온다. ‘머리’라고 하면서도 머리에 물을 들이는 염색은 절대 No. 그렇다면 머리 아니, 정확하게 말해 머리카락의 길이는 되고 색깔은 안된단 말인가.

나는 기성세대가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늘어놓는 이중적인 잣대가 우선 싫다. 부모 말 잘 듣는 아이들에겐 아이 말을 잘 들어주는 부모가 있기 마련이다. “아버지는 내 말 안 들어주는데 내가 왜?”라는 아이들의 반발은 당연하다. 부모니까 얼마든지 일방통행이 가능하다는 사고방식은 마주 달려오는 자동차처럼 정면충돌을 일으킨다.

부모들은 또 이렇게 말한다. “이게 다 너를 위해서”라고. 그리고 부모는 단지 자녀를 위해 존재할 뿐이란다. 착각하지 말아라. 나는 자녀를 위한 삶이 인생의 모든 목적인 것처럼 착각하고, 믿는 40대를 볼 때마다 답답하고 싫다.

동창 녀석중 한명은 딸의 부탁이라며 ‘H.O.T’의 사인을 부탁할 때마다 한숨과 함께 경계심을 발동한다. 곱게 키운 딸이 ‘늑대같은 놈들’에게 빠진 게 아니냐는 식이다.

이 또한 40대의 대단한 착각이다.곰곰히 생각하면 그들도 젊은 시절 뭔가에 빠져 열광했던 적이 있었을 텐데 까맣게 잊고 있다. 그들은 자녀들을 이해하려는 충분한 노력도 없이 다가서기 싫다는 아집에 빠져 “절대 No”를 연발한다. 보호라는 명목으로 귀도 가리고 눈도 가리는 그들의 맹목성이 난 미치게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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