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베끼면 한밑천…』 할리우드 재탕 바람

  • 입력 1998년 10월 8일 19시 04분


‘하늘아래 새로운 영화 없다.’

할리우드에서 봇물이 터진 ‘리메이크(Remake)’에 뛰어든 영화제작자들에게 좌우명을 묻는다면 이쯤되지 않을까. 최근 줄을 잇는 할리우드의 리메이크 영화 가운데 ‘퍼펙트 머더’와 ‘로리타’ 두 편이 17일 나란히 개봉된다.

기네스 펠트로, 마이클 더글러스가 주연을 맡은 ‘퍼펙트 머더’는 스릴러의 대가 알프레드 히치코크의 54년작 ‘다이얼 M을 돌려라’를 리메이크한 작품. ‘도망자’를 만들었던 감독 앤드류 데이비스는 남편과 아내, 그녀의 정부가 벌이는 고도의 심리전을 현대에 걸맞는 오락적인 스릴러로 옮겨 놓았다.

소설로 더 유명한 ‘로리타’는 62년 거장 스탠리 큐브릭에 의해 영화화된 적이 있다. 원작자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직접 각색을 맡았지만 원작의 비정상적인 성적 관계 등에 대한 묘사는 자취를 감춘채 ‘블랙 코미디’처럼 되어버렸다는 것이 중평.

30여년이 흘러 ‘로리타’ 리메이크에 나선 감독은 애드리언 라인. ‘나인 하프 위크’ ‘위험한 정사’등 그의 전작으로 보아 신판 ‘로리타’가 어떨지는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지난해 제작된 이 영화는 미국에서도 어린이 포르노그래피 방지법때문에 배급자가 나서지 않아 어려움을 겪다 지난달 25일 겨우 개봉됐다.

할리우드가 과거의 명작, 흥미진진한 소재를 리메이크해온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세남자와 아기바구니’ ‘네프 므와’ 등 프랑스의 코미디들은 리메이크의 단골소재들. 최근에는 빔 벤더스의 철학적인 영화 ‘베를린천사의 시’를 멜로 드라마로 바꿔놓은 ‘시티 오브 엔젤’, 컬트가 되어버린 일본의 ‘고지라’를 할리우드식 블록버스터로 리메이크한 ‘고질라’ 등이 있었다.

또 톰 행크스, 멕 라이언을 기용해 일본영화 ‘러브레터’를 리메이크한 영화제작이 한창인가 하면 맷 데이먼이 알랭 들롱을 대신할 ‘태양은 가득히’도 리메이크 대기작 목록에 올라있다. 히치코크의 ‘사이코’를 비롯, ‘나는 결백하다’ ‘39계단’ 등도 줄줄이 리메이크될 예정.

이미 고전이 된 영화를 리메이크할 경우 혹독한 평가절하를 감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할리우드는 리메이크에 집착해왔다. 이는 상상력의 고갈때문이기도 하고, 시대를 불문하고 흥미있는 소재에 집착하는 상업적 관심때문이기도 하다.

이유가 어떻든간에 영화의 ‘품질’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요소는 리메이크 자체보다 창조적인 재해석이 수반되었느냐의 여부라 할 수 있다. 일본에서 3백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던 ‘실락원’을 리메이크했으나 흥행에 참패했던 국내의 경험이 이를 잘 말해준다.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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