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경씨파문 계기 방송가]입조심! 마이크 조심!

  • 입력 1997년 9월 2일 07시 39분


방송가에 「설화(舌禍)주의보」가 내렸다. 최근 주차 시비 끝에 『힘없는 사람들이 잘 사는 세상이 돼야 한다』는 발언으로 이회창 신한국당 대통령후보측을 비판한 MC 허수경이 구설수에 오른 것을 비롯, 말(言)로 인한 사고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MBC측은 진작부터 예정됐던 유학을 떠나는 허수경 대신 1일부터 탤런트 이의정을 라디오 「정오의 희망곡」의 새 MC로 기용했다. 그러나 PC통신의 네티즌 사이에는 허수경의 발언에 대한 찬반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같은 방송사 「지금은 라디오 시대」의 진행자 이종환씨가 하이텔에 「제 얘기는 믿으십시오」라는 글을 올렸다. 「IJH0520」이라는 ID를 사용한 이씨는 『손님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 허수경이 조금 양보했어야 했다』면서 『이 일로 진행자가 교체됐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설화는 주로 권력층과 관련된 대목에서 발생하고 있다. 지난 6월 SBS 「출발 모닝와이드」의 「대선후보 부인과 함께」 코너에서는 진행자 민창기씨가 『한맺힌 분들보다 정상적인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말해 국민회의측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또 95년에는 현재 국회의원(민주당)인 작가 김홍신씨가 KBS2라디오 「안녕하세요 김홍신 김수미입니다」에서 『김대통령 비판했다고 그만두랍디다』라고 발언, 파문이 일기도 했다. 방송계의 한 중견간부는 『올해는 특히 12월 대선과 관련, 토론회와 토크쇼가 잇따를 예정이어서 어느 때보다 입조심에 신경을 쓴다』며 『요즘에는 정치인 뿐 아니라 연예관련 설화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허수경은 지난 5월 같은 프로에서 MBC 「별은 내 가슴에」의 탤런트 안재욱이 음반을 내자 『가창력은 좀 뒤지지만 가수로서 음반을 냈다』고 말해 거센 항의를 받았다. 설화는 방송의 역사와 함께 해 왔다. 심각한 경우 그 주인공이 피해를 보기도 했다. 원로아나운서 임택근씨의 『이승만박사가 이곳으로 데굴데굴 굴러옵니다』가 대표적 사례. 50년대 이승만대통령의 귀국장면을 비행기 바퀴까지 세밀하게 묘사하다 그만 바퀴를 「이승만박사」로 바꿔버린 것. 권력의 서슬이 퍼렇던 5공시절의 일화도 있다. KBS의 L아나운서는 당시 전두환대통령의 귀국을 중계하다 『트랩에서 내리는 박정희대통령각하…』라는 대목 때문에 중징계를 당했다. 88올림픽유치단의 귀국을 중계하던 P아나운서가 『유치단이 청와대에서 박, 아니 전두환대통령 내외를 만난다』는 한 음절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전두환대통령」을 10여 차례 반복했다는 일화도 방송가에 널리 알려져 있다. 〈김갑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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