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감동경영/기고] 장태관 재단법인 경청 이사장 “기술 훔쳐도 처벌 없는 나라”

  • 동아일보

우리나라에서 기술 탈취를 판단하고 처벌하는 데 있어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부경법)’은 매우 중요하다. 부경법 제18조(벌칙) 4항1호에는 아이디어를 침해하거나 상당한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를 훔치거나 중요한 자산인 데이터를 부정 사용하는 경우에는 처벌(징역형이나 벌금형)에서 제외한다고 규정돼 있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법률이 버젓이 존재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정부나 정치권에선 “기술은 국가 산업의 근간을 이룬다”며 “기술 탈취는 정말 나쁜 범죄라 반드시 근절하겠다”고 외친다. 그러나 정작 기술을 탈취한 기업에 벌을 주는 것에는 소극적이다. 법을 만들고 개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정작 범죄를 저지른 자들에게 관대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벌을 주지 않는데 누가 죄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겠나.

중소기업 A사는 행정조사에서 대기업을 상대로 국내 최초 아이디어 침해를 인정받고도 소송 한 번 진행해 보지 못하고 시효가 끝나버렸다. 상대 기업은 아무런 벌도 받지 않고 피해 기업만 위기에 직면해 있다.

B 중소기업은 자신이 이룬 성과를 도용한 가해 기업을 상대로 민사소송 항소심에서 일부 승소를 이뤄냈다. 하지만 남은 건 소액의 손해배상 판결과 수년간의 분쟁 여파로 무너진 경영 상태다. 역시나 상대 기업은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중소기업 C사는 최근 자신의 데이터를 부정하게 사용한 대기업을 상대로 행정처분을 끌어냈으나 더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가해 기업을 상대로 소송할 여력도 없을뿐더러 지금은 어려운 회사를 정상화하는 게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기술 탈취 근절을 외치는 정부도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가해 기업에 시정명령이나 권고를 하는 데 그친다. 가해 기업들은 뒤에서 웃음을 참고 있을 것이다.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공정거래위원장, 특허청장이 모인 ‘기술 탈취 근절에 관한 간담회’에 다녀온 적이 있다. 이후 정부는 기술 탈취 피해 기업 지원을 위해 ‘신문고’ ‘범부처 협의체’ 등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노력을 기울였고 앞으로도 기술 탈취를 뿌리 뽑는 데 앞장서겠다고 한다. 그러나 기술 탈취 가해 기업을 강력하게 처벌하지 않는 한 정부의 이런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탈취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산업계의 화두가 된 지도 10년이 훌쩍 지났다. 물론 그동안 정부, 국회, 여러 유관 단체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기술 탈취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한국형 디스커버리 등이 입법화되고 조금씩 발전이 있다는 건 부정하지 않는다. ‘상당한 노력’으로 관리돼야만 인정받았던 ‘영업비밀’이 지금은 단순히 ‘비밀로 관리’되는 것만으로 침해를 인정받을 수 있는 등 법의 담장 역시 조금 낮아진 것도 사실이다.

대통령께서 “주식시장에서 장난치면 패가망신하는 모습을 확실히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 산업의 근간을 이루고 우리의 미래라고 할 수 있는 기술을 탈취하는 자들에게도 그들의 기둥뿌리 하나 정도는 흔들 수 있는 벌을 주는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고 나서야 기술 탈취 근절을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최근 지식재산처에서 부경법 개정을 위한 TF팀을 꾸렸다고 한다. 허울 좋은 탁상공론이 아니라 더 이상 피해 기업들이 발생하지 않게,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그들이 구제될 수 있게, 그리고 죄를 지었으면 제대로 벌을 받을 수 있게 법이 개정되길 바란다. 나아가 피해 기업들의 눈물이 멈출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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