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고 관련 현안질의에서 이상휘 국민의힘 의원 책상에 김범석 쿠팡 의장의 사진기사 프린트가 놓여 있다. 2025.12.02. 뉴시스
쿠팡에서 3370만 명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발생한 지 한 달 만에 쿠팡 창업자인 김범석 쿠팡 Inc 의장이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김 의장은 “미흡한 대응과 소통부족에 사과한다”고 밝혔지만 너무 늦은 타이밍에 이어 사과문 내용도 기존 입장을 되풀이 하는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8일 쿠팡은 홈페이지 등을 통해 ‘쿠팡 김범석 의장 사과문’을 발표했다. 김 의장은 사과문에서 “쿠팡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많은 국민들이 실망한 지금 상황에 참담함을 금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그는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고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고 덧붙였다.
유출 사실이 알려진 이후 책임을 회피하며 뒤로 숨었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해명에 나섰다. 김 의장은 “무엇보다도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말로만 사과하기보다는, 쿠팡이 행동으로 옮겨 실질적인 결과를 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사과가 늦은 것에 대해서는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었다”면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저도 처음부터 깊은 유감과 진심 어린 사과의 뜻을 전했어야 했다”고 재차 강조했다.
김범석 쿠팡 의장이 공식 사과문을 발표한 28일 서울시내 한 쿠팡 물류센터에 배송트럭이 주차돼있다. 2025.12.28/뉴스1그러나 사과문의 상당 부분은 쿠팡이 25일과 26일 두 차례 발표한 입장을 되풀이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최근 정부와 협력을 통해 유출된 고객 정보 100% 모두 회수 완료했고, 유출자의 진술을 확보했고 모든 저장 장치를 회수했다”며 “유출자 컴퓨터에 저장된 고객 정보는 3000건으로 제한됐고, 이 또한 외부 유포나 판매는 없었다”고 밝혔다. 이는 쿠팡이 지난 25~26일 잇따라 낸 해명·반박문에서 이미 강조해온 내용이다.
정부 협조를 철저히 따랐다는 입장도 반복했다. 그는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와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고, 정부 요청에 따라 기밀 유지를 철저히 준수했다”고 설명하면서 ‘셀프 반박문’에 대응하는 입장을 내놨다.
김 의장은 사과문에서 “이사회를 중심으로 한국 고객에 대한 보상안을 마련해 조속히 시행하겠다”며 “정보보안 투자와 시스템을 전면 쇄신하겠다”고 밝혔지만 보상 대상과 규모, 실행 시점은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았다.
앞서 쿠팡이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26일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 자백을 받고 기기를 회수했다’는 반박문을 낸 가운데 국문본과 영문본에서 일부 표현을 다르게 한 것을 두고서도 논란이 일었다. 국문본에서는 정부·국회·언론의 비판을 ‘억울한 비판’, 사회적 반응을 ‘불필요한 불안감’으로 표현한 반면 영문판에서는 이를 ‘잘못된 비난(falsely accused)’과 ‘잘못된 불안감(false insecurity)’으로 기술했다.
이는 이번 사태 자체가 근거 없는 우려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하려는 의도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비판적인 여론을 사실과 전혀 다른 잘못된 내용에 기반해 추궁하고 있다는 쪽으로 판단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 것이다.
또한 국문본이 “쿠팡이 정부와 전폭적 협력을 약속했다”고 한 데 비해, 영문본은 “정부가 쿠팡에 접촉해 협조를 요청했다”고 적어 정부 주도의 조사였고 쿠팡은 이를 수동적으로 따랐다는 뉘앙스를 강조했다는 해석도 제기됐다.
25일부터 26일까지 연달아 쿠팡이 입장문을 낸 배경에는 주가 안정 등을 위해 미국 투자자 등을 의식한 대응으로 보인다는 해석이 나온다. 쿠팡의 대규모 정보보호 사태가 한달 째 접어들면서 쿠팡 주가는 떨어지는 추세였으나 쿠팡의 반박 성명 직후 미국 증시에서는 쿠팡 주가가 한때 큰 폭으로 상승했다.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따르면 쿠팡 주가는 26일(현지 시간) 종가 기준 24.27달러로 전일(22.80달러) 대비 6.45% 증가했다. 장중 한때 25.38달러까지 10%가량 치솟기도 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26일 “쿠팡의 자체 조사는 국가 수사체계를 무시하고 증거 인멸의 우려까지 있는 행위로서 납득할 수 없다”며 영업정지를 비롯한 가장 높은 수준의 제재를 촉구하고 나섰다.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다루는 국회 연석청문회가 30~31일 열릴 예정이지만 김 의장은 이번에도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잇단 불출석 속에 뒤늦은 사과문만 발표되자 “책임 있는 자세와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개된 사유서에 따르면 김 의장은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하지 못하게 됐음을 유감으로 생각하며 양해를 부탁한다”며 “본인은 현재 업무 차 해외 체류 중으로, 해외 비즈니스 일정이 사전에 확정돼 있어 일정 변경이 어려워 부득이하게 청문회에 출석이 불가함을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국회가 추가 증인으로 채택한 김 의장의 동생 김유석 쿠팡 부사장과 강한승 전 쿠팡 대표도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김유석 부사장은 “업무 차 해외 체류 중으로, 해외 비즈니스 일정이 사전에 확정돼 있다”며 김 의장과 같은 이유를 들었다. 강 전 대표는 “개인정보 사고 발생 전인 2025년 5월 말에 쿠팡 대표직을 사임했고 그 후 현재까지 미국에서 거주하며 근무하고 있다”며 “대표이사를 사임한 지 이미 7개월이 경과한 상황에서 회사의 입장을 대표해 증언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사료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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