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시장 빨아들이는 中 로봇청소기… 내수 과열에 해외 눈돌려[딥다이브]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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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청소기 시장 개척 美아이로봇… 아마존 인수 무산돼 구조조정 돌입
中, 제조사 200개 넘어 시장 과열
1위 기업 주가 1년새 65% 추락
한국시장 공습 가속화될듯

세계 로봇청소기 시장에 대격변이 일고 있다. 전통의 강자였던 미국 아이로봇은 중국 경쟁사에 밀려 빠르게 쇠락 중이다. 중국 에코백스가 1위로 떠올랐지만 중국 내수시장 경쟁이 과열되면서 지위는 위태롭다. 그러자 중국 업체들은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중국 로봇청소기의 한국 시장 공습도 더 가속화할 전망이다.

● 밀려난 아이로봇 룸바
미국 아이로봇의 고급형 제품 '룸바 J9+'
미국 아이로봇의 고급형 제품 '룸바 J9+'
미국 로봇청소기 제조사 아이로봇(iRobot)이 지난달 말 직원 31%(약 350명)를 해고하고 최고경영자를 교체하는 구조조정안을 발표했다. 아이로봇 인수를 추진해온 아마존이 인수 포기를 발표한 데 이은 조치다.

아이로봇은 2002년 가정용 로봇청소기 ‘룸바(Roomba)’를 출시하며 로봇청소기 시장을 개척한 기업. 2016년엔 세계시장 점유율 64%에 달하는 절대강자였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실적이 급격히 악화했고 2022년부터 적자의 늪에 빠졌다. 아이로봇은 아마존으로의 매각에 기대를 걸었지만 결국 무산됐다. 미국과 유럽연합 경쟁 규제당국의 반대에 부닥쳤기 때문이다. “아이로봇을 인수하면 아마존이 경쟁사를 도태시키게 될 것”이란 우려였다.

이를 두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사설을 통해 “엘리자베스 워런이 아이로봇을 중국에 바쳤다”고 비판했다. 빅테크 인수합병을 강하게 반대해온 워런 민주당 상원의원 같은 강경파 때문에 아이로봇과 경쟁하는 중국 기업만 웃게 됐단 뜻이다.

● 중국의 프리미엄 전략
중국 에코백스의 고급형 제품 '디봇 X2 프로'
중국 에코백스의 고급형 제품 '디봇 X2 프로'
현재 세계 로봇청소기 시장 1위 기업은 중국 에코백스(중국명 커워쓰)로 추정된다. 공식 점유율 수치는 없지만, 에코백스 매출은 이미 2022년부터 아이로봇을 추월했다. 에코백스의 지난해 1∼3분기(1∼9월) 매출은 아이로봇의 2배가 넘는다.

에코백스를 비롯한 중국 로봇청소기 제조사가 2010년대 말부터 두각을 보이는 건 기술력 때문이다. 로봇청소기 성능을 가르는 건 내비게이션 능력이다. 집 안 구조를 빠르게 파악해 지도를 만들고, 장애물을 피하면서 효율적인 경로로 청소해야 한다. 중국 제조사는 드론이나 자율주행차에 쓰이는 고급 첨단 라이다(LiDAR) 센서를 탑재해 이 성능을 끌어올렸다. 그 결과 제품 가격은 비싸졌지만 한층 똑똑해졌다. 뉴욕타임스의 제품 리뷰 서비스 ‘와이어커터’가 지난달 ‘최고의 로봇청소기’로 꼽은 제품 역시 중국 2위 업체 로보락(중국명 스터우커지)의 ‘Q5’였다. 아이로봇 룸바에 대해서는 “매핑(집안 지도 제작) 시간이 3배 이상 걸렸다”, “자주 장애물에 부딪혔다”며 추천하지 않았다.

먼지 흡입과 걸레질 기능을 통합한 제품을 일찌감치 내놓은 것도 중국 제품의 인기 이유다. 집 바닥에 카펫이 깔린 미국과 달리 바닥재가 마루나 타일인 아시아권에선 물걸레질이 필수여서다. 고급화 경쟁에서도 앞서갔다. 걸레를 자동으로 빨아주고 열풍 건조까지 시키는 이른바 ‘올인원’ 제품을 2021년부터 앞다퉈 내놨다.

● 내수 경쟁에 주가는 급락
중국 로봇청소기가 세계 시장을 휩쓸지만, 정작 선두기업 주가는 신통찮다. 에코백스 주가는 1년 새 65% 추락했다. 고점(2021년 7월 225위안)과 비교하면 7분의 1토막 수준이다. 중국 내수시장 경쟁이 너무 과열됐기 때문이다.

에코백스는 지난달 ‘연간 실적 예비 발표’를 통해 “2023년 순이익이 전년보다 60∼65% 감소할 걸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매출은 소폭 증가했지만 치열한 경쟁 탓에 판매 비용이 급증했다. 에코백스는 최신형 제품 ‘디봇 X2 프로’를 중국에서 정가보다 26% 할인 판매 중이다. 경기 둔화로 중국 소비가 위축되면서 비싼 로봇청소기가 잘 팔리지 않는다.

중국은 로봇청소기 제조사만 200곳 넘는 레드오션이다. 중국 기업 입장에서 살길은 해외 진출뿐이다. 에코백스 역시 성장세 회복을 위해 “올해엔 해외 사업 비중을 키우는 데 주력한다”고 밝혔다. 이미 로보락이 해외 진출 효과를 입증했다. 일찍부터 해외로 나선 로보락은 높은 해외 비중(52%) 덕분에 지난해에도 높은 성장세를 기록했다. 주가도 지난 1년 동안 40%나 뛰었다.

한국은 중국 로봇청소기 제조사가 노리는 주력 시장이 될 전망이다. 프리미엄 전략이 잘 통하기 때문이다. 2020년 한국에 법인을 설립한 로보락은 2022년 국내 시장 점유율 1위로 올라섰고, 지난해 상반기(1∼6월)엔 약 7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판매가격이 180만 원 전후인 최고가 제품이 홈쇼핑 방송에서 5분 만에 매진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LG전자가 2003년, 삼성전자가 2006년 로봇청소기를 처음 출시했을 정도로 한국 기업은 이 시장에 일찍 뛰어들었다. 하지만 2013년 LG전자 전직 연구원이 중국 가전회사로 로봇청소기 핵심 기술을 유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중국 기업은 이 분야 연구개발에 열을 올렸고, 지금은 성능이 앞선 제품을 내놓고 있다. 김현진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중국 로봇청소기 기업은 1000명 넘는 연구원이 전담 투입되는데, 우리나라 기업은 30명 수준”이라며 “중국의 인해전술에 국내 기업이 밀리고 있다”고 말했다.


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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