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합리한 ‘정유사 횡재세’ 경계해야[기고/김우철]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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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
고물가로 모두 고통 받는 가운데 전해진 정유사들의 대규모 영업이익 소식은 대중의 감정선을 자극할 만했다. 문제는 일부 의원이 고유가 시기 일시적 이익을 횡재로 규정하고 국내 정유사들에 법인세의 2배 가까운 세금을 부과하는 법안까지 발의하고 나선 데 있다.

공유재적 속성이 인정되는 지하자원이 채굴사업자의 독점적 지위에 의해 폭리를 취하는 수단으로 남용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횡재세다. 독점적인 원유시추 사업에서 횡재에 가까운 막대한 이익을 보는 국제 석유 메이저를 대상으로 주로 부과되는 세금이다.

1980년 미국이 2차 오일쇼크하에서 이익이 폭등한 석유기업들에 ‘원유횡재이윤세’를 과세한 것이 시초다. 최근 대표적 사례로는 영국이 5월부터 석유·가스기업들에 유지해 오던 높은 법인세율을 추가로 25%포인트 올린 것을 들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할 사항은 영국 정부가 원유를 시추하지 않고 정제만을 전문으로 하는 정유기업들은 횡재세 부과 대상에서 배제했다는 점이다. 제조업체에 해당하는 정유사 수익은 정제마진에 기반한 것으로, 석유메이저들이 원유시추에서 얻는 횡재적 이익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고유가 환경에서 국내 정유사는 비싼 가격으로 원유를 수입해야 하고, 이를 정제해 생산한 휘발유나 경유 제품을 국내에 판매하거나 국제시장에 수출함으로써 수익을 낸다. 8월 들어 정유사들의 정제마진이 손익분기점까지 급락한 점에서 알 수 있듯 유가가 높다고 해서 시추기업들처럼 예외적으로 높은 수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유가가 낮았을 때 원유를 수입한 덕분으로 발생한 상반기 재고평가이익은 유가가 하향세를 띠는 경우 손실로 반전될 위험마저 크다.

국내 정유사 정제마진이 국제 정유시장 평균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은 상황에서, 폭리에 의한 초과이익이란 주장 또한 공감을 얻기 어렵다. 정유사 전체 매출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수출에서 더 많은 이익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국내 소비자의 피해를 통해 큰 이익을 봤다고 강변하는 것 역시 합리적이지 않다.

기업 입장에서 세금 증가는 비용 상승 요인으로 작용해 제품 가격에 전가되는 것이 일반적 현상이기에 유류세 인하 정책의 가격안정화 효과가 온전히 나타나기 어렵게 만드는 문제도 있다. 더 심각한 부작용은 투자수익률 저하를 예상하는 정유기업들이 설비투자 증대를 꺼려 사업이 위축되고, 국내 기업 역차별에 따른 석유제품 가격경쟁력 약화로 주력 수출 부문의 비교우위까지 훼손될 수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19 경기 침체 국면의 초저유가 시기에 초래된 정유사 손실이나 정유 이외 업종에서도 대규모 이익이 발생한 사실에는 애써 눈을 감은 채 해외의 황재세 사례를 무리하게 적용하려는 것은 졸속입법 시도와 다름없어 극히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
#고물가#정유사#영업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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