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30% 줄고 대출이자 껑충… “직원 내보내고 밤엔 대리운전”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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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0조 부채 부메랑이 온다] 〈2〉벼랑 끝 자영업자
은행 3곳서 대출… 카드론까지, 금리 올라 이자만 내는 것도 벅차
“원금상환 시작땐 갚을 자신 없다”… 자영업 78만 가구 적자에 허덕
26만 가구는 1년도 못버틸 지경… 1억 즉시상환 부담에 폐업도 못해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노래연습장에서 한 직원이 손님이 없는 텅 빈 가게를 청소하고
 있다. 이 노래방 사장은 매달 쌓이는 적자에 은행과 저축은행 등에서 2억5000만 원의 빚을 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자영업자 대출은 지난해 말 사상 처음 900조 원을 넘어섰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노래연습장에서 한 직원이 손님이 없는 텅 빈 가게를 청소하고 있다. 이 노래방 사장은 매달 쌓이는 적자에 은행과 저축은행 등에서 2억5000만 원의 빚을 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자영업자 대출은 지난해 말 사상 처음 900조 원을 넘어섰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인천에서 당구장을 운영하는 신모 씨(34)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정부가 저금리로 지원하는 소상공인 대출로 총 5000만 원을 빌렸다. 이 중 2500만 원은 올해 4월 갚아야 했지만 정부의 만기 연장 조치로 내년 4월로 미뤄졌다. 1%대 중반이던 대출 금리는 2%대로 뛰었다. 그는 “현재 이자만 내는 것도 벅차다. 원금 상환이 시작되면 갚을 자신이 없다”고 했다.

신 씨는 소상공인 대출 외에도 내 집 마련을 위해 빌린 주택담보대출 원리금을 매달 200만 원씩 갚고 있다. 여기에다 가게 임차료, 공과금 등으로 매달 400만 원이 고정적으로 나가지만 당구장 매출은 30% 이상 줄었다. 신 씨는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지난해 10월 직원을 내보내고 혼자 일하고 있다. 3개월간 야간 대리운전을 뛰기도 했다. 그는 “당구장을 팔까 했지만 사겠다는 사람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일하고 있다”고 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앞두고 자영업자 부채 관리가 한국 경제의 시급한 과제가 됐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빚 증가 속도가 가파른 데다 코로나19 장기화로 한계에 몰린 자영업자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정부의 지원으로 버티고 있는 자영업자들의 부실이 조만간 수면 위로 드러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대출 때문에 폐업도 못 해”

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전체 467만 자영업 가구 가운데 벌어들인 소득으로 필수 지출과 대출금 상환액을 감당하지 못하는 ‘적자 가구’는 77만8000가구(16.7%)였다. 코로나19 확산 초기인 2020년 3월 말(69만6000가구)에 비해 8만 가구 넘게 늘었다. 적자 가구가 짊어진 금융부채는 177조1000억 원으로 전체 자영업 금융부채의 36.2%를 차지했다. 주택담보대출 등 일반 가계대출은 제외하고 개인사업자 대출만 집계한 금액이다.

적자 가구 중 26만6000가구는 예금·적금 등을 깨도 1년도 버티지 못하는 ‘유동성 위기 가구’로 분류됐다. 이들의 금융부채는 72조 원으로 2020년 3월보다 13조 원 가까이 급증했다. 한은 관계자는 “매출 회복세가 더딘 숙박업 음식업 등에서 유동성 위기 가구가 늘었다”며 “정부의 금융 지원 조치가 끝나면 부실 위험이 빠르게 높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1월 전국경제인연합회 설문조사 결과 자영업자 10명 중 4명(40.8%)은 현재 폐업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빚으로 연명하는 자영업자들은 쉽게 폐업도 못 하는 처지다.

전북 전주에서 술집을 하는 김모 씨(30)는 올해 초부터 가게를 휴업하고 공사장 일용직을 뛰고 있다. 매달 임차료 50만 원을 내면서도 문을 닫지 못하는 건 폐업하면 개인사업자 등록이 말소돼 소상공인 대출 1억 원을 바로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장사가 안돼 모아 놓은 돈으로 코인 투자에 나섰다가 큰 손실을 봤다”며 “개인회생을 상담 받았지만 코인 투자 때문에 부채 탕감이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했다.
○ 금리 뛰는데 자영업 다중채무·카드론 급증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 가운데 다중 채무를 떠안은 취약 차주들이 많아 본격적인 금리 인상기를 버텨내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신용정보회사 나이스평가정보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현재 개인사업자 차주 276만9609명 가운데 27만2308명이 금융사 세 곳 이상에서 돈을 빌린 것으로 집계됐다. 대출을 받은 자영업자 10명 중 1명이 다중채무자인 셈이다.

서울 종로구에서 28년째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이모 씨(58)도 최근 2년 새 은행 세 곳에서 세 차례에 걸쳐 소상공인 대출 9000만 원을 받았다. 카드론도 300만 원 갖고 있다. 이 씨는 “코로나19로 문 닫은 날이 많아 지난달에만 300만 원 넘게 적자를 봤다. 상황이 악화되면 카드론을 더 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개인사업자가 보유한 가계 대출과 사업자 대출이 저축은행 카드 캐피털 등 고금리 업권에서 급증하고 있다”며 “매출 감소가 큰 사업주일수록 카드 대출을 많이 이용했다”고 분석했다. 은행 등 금융권도 빚으로 돌려 막으며 버티는 자영업자들을 우려하고 있다. 대출 만기 연장 등 정부 지원책이 종료된 뒤 금융사들이 자영업자 부실 대출 처리에 동참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자영업자 부실이 현실화되면 내수가 위축되면서 경기 둔화로 이어질 것”이라며 “정책금융 지원을 통해 자영업자 부채를 장기 저리로 전환시키고 손실 보상을 위한 재정 투입도 5년 이상 중장기로 가져 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


#대출이자#자영업자#은행#카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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