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성 대체육이라더니… 웬 쇠고기”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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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거나 모호한 문구로 성분 표시… 불만 터지자 뒤늦게 원재료서 빼내
소비자 “친환경 가치구매 심리 악용”… 식약처 “표시 등 위반 가능성 있어”

대학생 정현태 씨(26)는 최근 편의점에서 함박스테이크를 구매해 한입 먹고 황급히 뱉었다. ‘식물성 대체육 상품’이라고 크게 적혀 있어 골랐지만 먹으면서 성분표를 자세히 보니 쇠고기, 계란 등 동물성 재료가 줄줄이 포함돼 있었다. 그는 “식물성 대체육을 강조하기에 동물성이 있을 줄 몰랐다”며 “친환경 브랜드에 보탬이 되겠다는 소비자의 선한 의도가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당한 기분”이라고 말했다.

가치소비 시장이 커지면서 ‘먹거리 그린워싱(가짜 친환경주의)’ 상품을 내놓는 업체들도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물성 성분이 함유돼 있는데도 제품 패키지나 성분 표시를 모호하게 하는 식이었다. 패션업계에서 생산 과정의 환경오염은 감춘 채 친환경 원료로 만들었다는 사실만 부풀려 ‘그린 워싱’ 논란을 일으켰던 것처럼, 식품 시장에서도 소비자를 기만하는 판매가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쪽짜리 친환경 식품들은 주로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주 고객인 편의점 업계에서 발견된다. 가치 소비에 민감한 MZ세대를 잡기 위해 식물성 식품을 표방한 제품을 내놓으면서 주의 성분은 깨알 같은 글씨로 넣는 등 제대로 표기하지 않고 ‘플랜트 베이스드’(식물성 기반) 같은 모호한 문구를 앞세웠다. 지난달 GS25가 ‘채식 먹거리 확대’를 앞세워 내놓은 대체육 간편식에는 쇠고기, 새우, 우유 등 동물성 성분이 함유된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 불만이 커지고 나서야 GS25는 이달 초 전 제품 리뉴얼을 거쳐 동물성 원재료를 전부 뺐다. 이마트24가 판매 중인 ‘플랜트 튜나마요샌드위치’에는 우유가, 지난해 CU가 3개월간 팔았던 ‘채식주의’ 김밥에는 동물성 단백질인 글리신이 함유됐다.

발품을 팔아가며 일부러 친환경 제품을 고집하던 소비자들은 “속았다”는 반응이다. 직장인 전모 씨(26)는 “식물성을 강조한 신제품이 나오면 온 동네 편의점을 돌아다녀서라도 구한다”며 “음식을 넘어 친환경이라는 가치를 구매하는 건데 그런 심리를 악용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제품 패키지는 물론 현장 근무인력의 안내가 미흡한 경우도 적지 않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거주하는 이모 씨(32)는 지난해 버거킹에서 ‘0% Beef’ 식물성 버거를 내놓는다고 해서 출시일에 맞춰 달려갔다. 당시 매장 직원에게 마요네즈의 동물성 여부를 물었지만 모르겠다는 답변만 돌아와 결국 본사에 문의한 결과 동물성 성분이 들어간 걸 알게 됐다. 스타벅스가 이달 출시한 식물성 음료의 비건 여부를 수도권 매장 3곳 직원에게 문의해 본 결과 답변은 엇갈렸다.

반쪽짜리 친환경 제품은 현행 식품표시광고법(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에 위반될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채식의 정의에 관한 규정은 아직 정립되어 있지 않지만 제8조 ‘부당한 표시 또는 광고행위의 금지’에 따르면 소비자를 기만하는 표시와 광고는 금지된다. 식약처 관계자는 “제품별 사안에 따라 위반 행위로 결정될 가능성이 있다”며 “비건, 대체육이 소비자 화두로 떠오른 만큼 관련 규정 도입 역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식물성 대체육#쇠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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