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명 은행장-공기업대표 고발하겠다는 금융노조

  • 동아일보

문재인 정부 출범후 목소리 점점 커져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금융권에서 노조의 힘이 점차 세지고 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은 31일까지 은행이 산별교섭이나 공동교섭에 응하지 않으면 33명의 은행장과 금융공기업 대표를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고소·고발하겠다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일부 노조는 직접 사외이사를 선임해 경영을 감시하겠다는 계획까지 밝혔다.



○ 금융노조, 은행장들 고발하겠다며 강공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영구 은행연합회장은 전날 허권 금융노조 위원장과 만나 산별교섭 재개 여부를 논의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당초 하 회장과 허 위원장은 오전 내에 산별교섭 재개 건을 매듭지을 계획이었지만 양측의 견해차가 좁혀지지 않아 오후까지 회의를 계속했다.

산별교섭은 해당 업계의 노동자와 사용자 대표가 만나 임금상승률 등 근로조건에 합의하면 업계 전체에 적용되는 것으로 노동계가 선호하는 방식이다. 금융권은 2010년부터 산별교섭을 진행했지만 지난해 성과연봉제 도입을 두고 노사 갈등이 커지며 중단됐다.

하 회장은 임금체계를 개선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지 않으면 산별교섭을 재개하는 게 어렵다고 노조에 밝혔다. 은행업계의 고임금 구조를 먼저 손봐야 한다는 은행장들의 민원을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노조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강공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31일 공동교섭(각 금융기관 대표와 노조 대표가 모두 모여 협상하는 방식)에도 응하지 않을 경우 시중은행과 금융공기업 등 총 33개 금융사 대표를 모두 고용노동청에 고소·고발하기로 했다. 허 위원장은 “사측이 노조의 교섭 요구를 무조건 회피하는 건 명백한 부당노동행위”라며 날을 세웠다.

이 같은 노조의 대응은 예전과 비교하면 크게 달라진 것이라는 게 금융권의 평가다. 은행권 관계자는 “지난해 은행들이 산별교섭을 거부했을 땐 금융노조가 별다른 법적 대응을 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노조에 힘을 실어주는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응 수위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 사외이사 추천권도 요구

노조의 달라진 힘은 금융권 곳곳에서 발견된다. KB국민은행 노조는 11월 주주총회에서 참여연대 출신 하승수 씨를 사외이사로 추천하기로 했다. 노조의 성향에 맞는 인물을 사외이사로 선임해 경영을 감시하겠다는 것이다. 박홍배 국민은행 노조위원장은 “사측이 경영을 잘하는지 살펴보는 건 노조의 일상적인 활동”이라며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 추천 안건을 올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근 KEB하나은행은 ‘가정의 달 행사비’ 등을 지급하라는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하나은행과 외환은행 합병 전 외환은행 노조에 지급되던 것이다. 한국씨티은행은 지난달 노조의 반대에 부닥쳐 폐쇄하려던 점포 수를 101개에서 90개로 줄였다. 지난 정부에서 도입이 추진되던 금융권 성과연봉제는 사실상 폐기 수순을 밟고 있다.

일각에서는 은행이 정부의 ‘친(親)노동’ 기조에 밀려 지나치게 노조의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노조 출신인 김영주 의원이 고용노동부 장관에 임명된 점을 의식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권 관계자는 “현 정부의 분위기라면 노조와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 봤자 아무런 득이 될 게 없다는 인식이 있다”고 귀띔했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사의 합의는 존중돼야 한다”면서도 “다만 사측이 당장의 평화를 위해 노조와 잘못된 관행을 만들면 나중에 다른 노사분쟁의 불씨가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
#문재인 정부#금융노조#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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