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女은행장’ 권선주 기업은행장, 퇴임…“39년간 은행은 저의 둥지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27일 15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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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첫 여성 은행장에 오르며 '유리천장'을 깬 인물로 평가받는 권선주 IBK기업은행장(60)이 27일 임기를 마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1978년 입행해 주판을 잡은 뒤로 39년간 이어진 은행원으로서의 삶은 행원 400여 명과 악수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이날 서울 중구 기업은행 본점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권 행장은 "기업은행은 제 인생의 전부였고 은행원의 삶 역시 제겐 천직(天職)이었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은행권에서 권 행장은 줄곧 '여성을 향한 편견'을 깨는 길을 걸어왔다. 1978년 여성 공채 1기로 기업은행에 입행한 뒤 프라이빗뱅킹(PB) 부사업단장, 카드사업본부장, 금융소비자보호센터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첫 여성 1급' '첫 여성 지역본부장' '첫 여성 부행장'이라는 타이틀도 그의 몫이었다.

'언니'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엄마'처럼 꼼꼼한 일처리 덕분에 직원들은 그의 경영 방식을 '머더십(영단어 mother와 leadership을 합친 신조어)'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권 행장은 "여성으로서 일과 삶이 힘겨울 때도 일을 포기하지 않았고 그런 제 인내와 노력에 기업은행은 늘 기회를 내어줬다"고 회고했다.

권 행장 재임 기간 기업은행은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일궈냈다. 당기순이익 '1조 원 클럽'에 다시 진입했고 9월에는 총 자산이 300조 원(연결기준)을 넘어섰다. 중소기업 대출은 130조 원을 돌파해 시장점유율 22.8%를 기록하며 역대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하지만 다소 아쉬운 점도 있었다. 성과연봉제 도입 등 정부의 금융공공기관 관련 정책 추진 과정에서 보인 노조와의 대립이 대표적이다. 권 행장은 2013년 12월 취임사에서 "외풍(外風)으로부터, 또 수많은 도전으로부터 당당히 맞서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국책은행의 한계를 뛰어넘기는 쉽지 않았다. 권 행장은 "좀 더 속 시원하게 사정을 말씀드리고 자주 이해를 구하지 못해 진심으로 미안하다"며 "모든 원망은 제게 돌려 달라"고 말했다.

행원들에게 건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는 "제가 은행에 봉사한다고 생각했는데 은행이 저를 받쳐주고 있었다"며 "알고 보니 은행은 저를 이만큼 자라게 한 둥지였다"고 털어놨다.

권 행장은 고맙다는 말로 이임사를 마무리했다. 그는 "공들인 39년의 시간만큼 IBK기업은행은 제게 소중한 이름"이라며 "여러분의 선배, 한 명의 고객으로 돌아가 IBK기업은행을 영원히 사랑하고 응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창규 기자 k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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