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외풍’에 휘둘려 무리한 조사… 시장 혼란만 부추겨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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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CD금리 담합 무혐의’ 결론

공정거래위원회가 6개 시중은행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담합 의혹 조사를 4년여간 끌고도 혐의를 입증하지 못하자 “처음부터 무리한 조사였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최근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인수합병(M&A)에 제동을 건 데 이어 시중은행 금리 담합 조사마저 ‘부실 논란’에 휩싸이면서 ‘공정위의 행정력 남용이 시장의 혼란을 부채질하고 민간 부담을 키운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금리 담합조사

2012년 7월 착수한 공정위의 CD 금리 담합 조사는 시작부터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글로벌 은행들의 리보(런던 은행 간 금리) 조작 사건이 터지면서 세계적으로 금융권에 대한 비판 여론이 고조됐었다. 금융권에선 금융권의 대출금리 인하를 유도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에서 국내 CD 금리 담합 조사가 시작됐다고 보는 관측이 많다. 당시 조사를 주도한 김동수 전 공정거래위원장은 취임 첫날부터 ‘물가관리 당국’을 자처하며 담합 조사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정부 안팎에서 공정위가 대기업들의 불공정거래 행위 개선보다 물가 관리를 통한 서민 생활 안정에 역점을 두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공정위가 정치적 코드를 맞추느라 ‘조사의 ABC’도 지키지 못하고 무리하게 판을 벌였다는 비판도 나온다. 공정위는 금융권을 조사할 때 사전에 금융당국과 조율하는 관례를 깨고 금융감독원과 사전 조율 없이 시중은행 금리 담합 조사에 착수했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는 구체적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금융회사가 관련된 담합 사건을 조사할 때 연방수사국(FBI) 등과 공조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공정위가 조사를 서두르는 모습을 보면서 은행들의 금리 인하를 유도하려는 것처럼 느꼈다”고 말했다.

속전속결로 마무리될 것 같았던 금리 담합 조사는 정권이 바뀌고 공정위원장이 두 번이나 교체되는 과정에서 동력을 잃었다. 후임인 노대래 전 공정거래위원장과 정재찬 현 공정거래위원장은 “결과를 조속히 내놓겠다”고 말했지만, 발표는 차일피일 미뤘다. 공정위 내부에선 “전임 위원장이 벌인 일이다 보니 뒷수습을 하려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 빈약한 증거 ‘부실 조사’ 논란

공정위 사무처가 금융권을 들쑤시며 4년간 조사하고 내놓은 심사보고서는 ‘낙제’ 수준을 면치 못했다. 공정위 심사관들은 은행들의 담합 때문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려도 CD 금리의 변동이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지난달 22일 열린 공정위 전원회의에서는 “CD 발행이 줄어 시장과 무관하게 전날 고시 수익률로 CD 금리가 결정됐기 때문”이란 은행 측의 해명이 더 설득력을 얻었다. 2012년 공정위가 현장조사에 들어간 뒤에도 CD 금리가 여전히 높게 유지됐다는 점도 은행 측의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시중은행 담당자들이 있는 채팅방에서 담합이 이뤄졌을 것’이란 공정위의 주장도 전원회의에서 집중 공격을 받았다. “CD 발행과 직접 관련이 없는 사람들도 채팅방에 있었다” “과장급 실무자들이 과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겠느냐” 등 상임위원들의 매서운 지적이 이어졌다.

심사보고서의 사실관계가 틀려 공정위가 관련 내용을 철회하는 촌극도 벌어졌다. 공정위는 농협이 특수은행고시수익률을 적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농협은 일반 은행들과 달리 CD 금리와 관련해 특수은행수익률을 적용받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농협 측 변호인이 전원회의에서 “심각한 오류”라고 지적하자 공정위는 현장에서 이 주장을 철회했다.


○ 산업계 “무리한 조사로 시장 혼란 가중”

공정위로부터 CD 금리 담합 조사를 받았던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공정위의 의혹 제기만으로 은행이 금리를 조작해 돈놀이를 했다는 부정적 여론이 생겨 신뢰도에 큰 타격을 받았다”며 “조사가 4년이나 이어지면서 은행들이 지출한 비용도 상당하다”고 비판했다.

공정위가 무리한 조사로 산업계의 혼란을 가중시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M&A를 불허하면서 국내 케이블TV 업계의 자율적인 사업 재편에 제동이 걸렸다. 시장의 혼란도 커졌다. CJ헬로비전은 올해 신입사원 채용도 할 수 없게 됐고, 진행 중이던 투자 논의와 연구개발(R&D)도 잠정 중단됐다. CJ헬로비전 관계자는 “올해 사물인터넷(IoT) 융합 서비스 등 신규 사업들을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SK텔레콤 측도 “올해 신규 서비스가 거의 전무한 상태”라고 말했다.

공정위가 국내 기업들에 칼날을 휘두르면서 외국 기업에는 유독 약한 모습을 보인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정위는 2011년 네이버와 다음이 구글을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제소했지만 본사 조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올해 4월 미국계 정보기술(IT) 기업인 오러클의 ‘끼워 팔기’ 혐의 조사에서도 백기를 들었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장은 “공정위가 외풍에 휘둘리지 않고 치밀한 경제적 분석을 바탕으로 판단을 내려야 시장의 혼란의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손영일 scud2007@donga.com /정임수·곽도영 기자
#공정위#cd금리#담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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