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이거 레이싱카 아냐?”… ‘미친’ 주행 성능에 등줄기 촉촉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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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동빈 기자의 DRIVEN
벤츠 AMG GT S

“이런 미친.”

메르세데스-AMG ‘GT S 에디션1’의 스티어링 휠을 잡은 지 5초 만에 입에선 이런 탄식 비슷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폭이 295mm에 이르는 던롭사의 ‘MAXX GT’ 후륜 타이어가 지하 주차장 램프를 밟는 순간 차 안에서 ‘뚜두둑’ 하며 둔탁한 파열음이 들렸기 때문이다. 차체가 과도하게 강화돼 비틀림을 거의 허용하지 않는 레이싱카를 운전할 때 자주 듣던 소리와 유사했다.

주차장을 벗어나 노면이 좋지 않은 도로에 접어드는 순간 이 차는 일반 도로용 승용차가 아니라는 ‘내용증명’에 확인 도장을 찍을 수 있었다. 서스펜션을 가장 부드럽게 세팅했지만 차는 손으로 점자책을 읽어 나가듯이 도로 굴곡의 모양을 자세히 알려줬다. 토비아스 뫼어스 메르세데스-AMG 대표는 “출퇴근할 때도 탈 수 있는 스포츠카”라고 소개했지만 프로 레이서인 기자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다. AMG의 엔지니어들이 정말 제대로 ‘미쳐서’ 신나게 만들었는데 결과물이 레이싱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고, 자신들의 ‘범죄’를 덮기 위해 크롬과 가죽으로 인테리어를 감싸고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컵홀더 2개를 넣은 뒤 데일리 스포츠카라고 우기는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마저 들게 한다.

그런데 그들의 실수가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수익을 생각하고 주판알을 튕기며 포르셰 ‘911 카레라’처럼 편한 스포츠카를 만들어냈다면 이렇게 ‘레이시(Racy)’한 차를 만나볼 수 없었을 테니.


레이싱 테크놀로지 집약체


설명서를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기술집약적인 제품들이 간혹 있다. AMG GT S 역시 그런 부류다. 논문 1편 분량의 다양한 레이싱 기술이 접목됐다. 차체는 92%의 알루미늄과 6.6%의 철, 1.4%의 마그네슘 합금으로 구성돼 기본 뼈대 무게가 231kg에 불과하다. 마그네슘은 알루미늄보다도 가볍고 튼튼하지만 가공이 힘들고 부식도 심해서 폭넓게 차에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AMG GT S에도 양쪽 헤드라이트와 라디에이터를 고정하는 지지대 부품으로만 쓰였다.

엔진은 앞 차축 뒤로 배치하는 프런트 미드십 방식을 채택해 차체의 운동 성능을 극한까지 높였다. 여기에 더해 변속기는 엔진에 물려 있지 않고 뒤 차축으로 분리했다. 무거운 부품을 분산 배치하는 전략이다. 덕분에 전후 차축의 무게 배분은 47:53으로 뒤가 약간 더 무겁다. 엔진과 변속기 사이에서 동력을 전달하는 프로펠러 샤프트는 탄소섬유 소재다. 이는 차체를 가볍게 하면서 동시에 엔진의 회전을 가볍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V8 4.0L급 터보 엔진의 오일 윤활 방식도 레이싱카에서 쓰는 드라이섬프다. 구조가 복잡하지만 엔진 바닥에 오일이 고여 있는 오일팬을 없애 엔진을 더욱 낮게 배치할 수 있고, 극한 상황에서도 오일의 윤활 작용이 유지되는 장점이 있다. 서스펜션은 전후륜 모두 더블 위시본 타입이며 관련 부품들은 운동 성능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가벼우면서도 단단한 단조 알루미늄을 사용했다.

여기다 시승한 에디션1 트림은 일반 GT S와 달리 루프를 알루미늄 대신 카본으로 대체해 약 3kg을 차체의 가장 높은 곳에서 추가로 덜어내 무게 중심을 낮췄다. 또 브레이크 디스크는 가볍고 열에 강한 카본-세라믹 복합소재가 들어갔고 뒤에는 다운포스를 크게 발생시키는 고정식 스포일러가 달려서 더욱 레이싱카에 가깝다.

운전 감성도 레이싱카

레이싱카는 일반인들의 생각과는 달리 심리적인 안정감은 일반 승용차보다 떨어진다. 특히 날카롭고 예민해서 고속 직진 주행 중에는 불안정한 느낌마저 준다. 승부처인 커브길에서 더 빨리 달리기 위한 세팅을 해서다. AMG GT S는 시속 250km를 넘으면 심리적인 불안감을 준다. 최고 속도가 시속 310km에 이르지만 일반 세단형 AMG 모델보다 초고속에서 전륜의 안정감이 떨어진다. 전륜에 하중이 적게 걸리는 프런트 미드십 방식에다 무게 배분마저 뒤쪽이 더 무거우니 속도가 올라갈수록 전륜이 가볍게 느껴진다. 레이싱카는 직진 가속하는 상황에서 전륜의 가벼움이 중요치 않다. 레이서가 편안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커브길에 들어서면, 게다가 브레이크까지 함께 걸어 하중이 앞으로 쏠리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일반 자동차는 고속주행 중 스티어링 휠을 살짝 꺾은 상태에서 브레이크까지 밟으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불안정해진다. 심하면 원하는 방향으로 조향이 되지 않거나 스핀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AMG GT S는 오히려 이때부터 즐거워지기 시작한다. 내리막 좌우 복합 커브길을 달려보면 우월한 자세제어 능력으로 차의 앞머리가 노면에 철썩 달라붙으면서 칼로 자른 듯이 코너를 돌아나간다. 레이스 감각 그대로다. 브레이크를 조금 과격하게 써도 회전반경이 커지는 언더스티어나, 스핀을 할 것 같은 오버스티어가 크게 억제돼 있어서 일반 스포츠카와도 격이 다른 코너링 감각을 보여준다. AMG 엔지니어들의 ‘똘끼’에 경의를 표한다.
무게가 231kg에 불과한 AMGGT S의 알루미늄 차체.
무게가 231kg에 불과한 AMGGT S의 알루미늄 차체.

스포츠카 운전이 스포츠인 이유

요즘 웬만한 스포츠카는 중형 승용차처럼 운전이 쉽다. 승차감도 좋고 편의장치도 충분해 운전하면서 땀이 날 이유가 별로 없다. 하지만 AMG GT S는 한 시간 정도 열심히 운전하면 러닝머신을 달린 것처럼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 그만큼 팽팽한 긴장감의 연속이다. 어느 속도대에서도 편하지만 어떤 속도에서라도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안정감보다는 랩타임에 목숨을 거는 레이싱 타입으로 세팅이 됐기 때문이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에 이르는 제원상 3.8초인데 과도한 휠스핀을 조절해주는 론치컨트롤을 켜고 스타트를 하면 어렵지 않게 제원에 나온 가속력을 경험할 수도 있다.

한정판이었던 에디션1 트림은 판매가 종료됐고 이제는 ‘GT’와 ‘GT S’ 두 종류를 구입할 수 있는데 무조건 GT S를 추천한다.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
#car#amggt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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