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진료 없애자” 세계는 의료비 다이어트 바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5일 03시 00분


코멘트

건보 비급여항목 의사가 임의 처방… 치료비 병원간 17.5배 차이나기도
“의료비 지출 30%는 불필요한 비용”… 美등 12개국 ‘현명한 선택’ 캠페인
한국도 의사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요즘 허리디스크 진단을 받은 환자들 가운데 수술 대신 고주파, 도수치료 같은 비수술적 치료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치료는 비급여 항목이라 수술보다 치료비가 비싸지만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하면 치료비를 보험금으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일부 병원들이 환자가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했다는 사실을 악용해 터무니없이 높은 진료비를 청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감사원 감사 결과 허리디스크 고주파 치료비의 경우 병원에 따라 비용이 최대 17.5배나 차이가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급여 항목을 보장하는 실손의료보험이 대중화되면서 생긴 문제다.

한국에 앞서 이런 상황을 겪은 미국에서 의사들 주도로 불필요한 검사와 과잉 진료를 피하자는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2012년부터 벌어지고 있는 ‘현명한 선택’ 캠페인이다.

24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05년 미국의 1인당 의료비 지출은 다른 나라들의 20배를 넘었다. 또 미국 의료비 지출의 30%는 불필요한 비용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미국 내과의학이사회(ABIM)는 이 같은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과잉 진료를 자제하자는 ‘현명한 선택’ 캠페인을 주도해 왔다. 미국 의료업계의 자정 캠페인인 셈이다.

ABIM은 우선 의사들에게 △이 처방이 정말 필요한가 △부정적 영향은 없나 △더 단순하고 안전한 처방이 있나 △처방을 하지 않으면 어떨까 △비용은 얼마나 들까 등 5가지 질문에 대해 자문해 볼 것을 권고했다. ABIM이 주도한 ‘현명한 선택’ 캠페인은 현재 미국 내 총 70여 개 학회와 국제학술단체가 참여할 정도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미국에서 시작된 ‘현명한 선택’ 캠페인은 최근에는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캐나다와 영국, 호주, 이탈리아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자발적인 동참이 이어지고 있고 지난해 6월 캠페인에 참여한 12개국 대표들이 미국에 모여 각국의 캠페인 추진 현황을 공유하고 향후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한국 의료계에서도 이 캠페인에 참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OECD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1인당 연간 의사 방문 횟수는 13.2회로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OECD 회원국 평균은 6.6회였다.

안형식 고려대 의대 교수(예방의학교실)는 국내 의료계의 낮은 수가와 행위별수가제 등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지만 과잉 진료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의료 서비스를 책임지는 의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안 교수는 “올해 초 이와 관련한 심포지엄을 열었다”며 “아직 움직임은 뚜렷하지 않지만 일부 의사들은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과잉 진료 문제는 보험업계에도 커다란 부담이다. 의사들의 과잉 진료와 일부 실손보험 가입자들의 과도한 ‘의료 쇼핑’은 보험회사들의 보험금 지출을 늘리고 결과적으로 다른 가입자들의 보험료 부담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생보업계 관계자는 “의료계가 ‘한국판 현명한 선택’ 캠페인에 참여한다면 불필요한 진료로 인해 낭비되는 사회적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현명한 선택(Choosing Wisely) 캠페인 ::

미국 내과의학이사회(ABIM) 재단이 의사와 환자들이 불필요한 검사와 과잉 진료를 피해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환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현명한 선택을 하도록 돕자는 취지로 2012년부터 전개하고 있는 캠페인. 미국과 캐나다 의사회가 주도해 영국, 호주, 이탈리아 등 세계 12개국으로 확산됐음.

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의료#의료비#과잉진료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