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잃어버린 20년, 독신 男女만 늘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27일 03시 00분


■ 30∼34세 절반만 결혼
男 75% 年수입 400만엔 이하… 女 68% “400만엔 넘어야 OK”

10월 5일 오후 7시 일본 도쿄(東京) 시부야(삽谷) 구의 퓨전 주점.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 입은 남녀들이 속속 들어왔다. 자신의 이름 옆에 사인한 뒤 참가비 1만 엔(약 13만7000원·여성의 경우 5000엔)을 내고는 와인잔을 집었다.

약 30분이 지나자 참석자는 40여 명으로 늘어났다. 남성은 일렬로 서서 자기 소개를 했다. 기업 컨설턴트, 스시가게 사장, 보험회사 직원 등 다양했다. 여성 20명도 테이블에 앉아 소개를 마쳤다. 이어 음식과 술을 마시며 자유롭게 이야기가 오갔다.

약 2시간 뒤 참석자들은 데이트를 하고 싶은 사람 3명을 적어냈다. 다섯 쌍의 커플이 탄생했다. 커플들은 의무적으로 다음 술자리로 옮겨야 했다.

이날 행사는 미혼자끼리 만나는 ‘독신자 모임’이었다. 참석자는 대부분 30, 40대. 모두 번듯한 직장이 있었고 다들 결혼을 하고 싶어 했다. 일본에서 30대 초반 남성의 절반가량이 짝을 구하지 못할 정도로 결혼하기가 녹록지 않음을 보여줬다. 기자는 이날 참석자들에게 결혼 사실을 밝히고 모임을 체험했다.

○ 결혼의 벽 ‘경제력’

메이지야스다(明治安田)생활복지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30∼34세 남성의 미혼율은 1950년 8.0%에서 2010년 47.3%로 급증했다. 25∼29세는 같은 기간 34.3%에서 71.8%로 뛰었다. 여성의 경우도 비슷하다.

자유로운 삶의 추구로 결혼을 기피하는 서구 젊은이들과 달리 일본은 ‘경제 문제’가 가장 큰 요인이다.

연구소가 2009년 전국 20∼39세 미혼자 4120명을 상대로 미혼여성에게 ‘결혼 상대자의 희망 연 수입’을 물었더니 400만∼600만 엔(34.6%), 600만∼800만 엔(22.4%)을 희망했다. 400만 엔은 약 5480만 원이다.

반면 미혼남성들의 실제 연 수입은 200만 엔 미만(38.6%)과 200만∼400만 엔(36.3%)이 전체의 70% 이상을 차지했다. 기대치와 실제 간에 차이가 컸다.

○ 만남보다 ‘자기계발’ 우선

요미우리신문이 올해 6월 20, 30대 독신자를 대상으로 ‘결혼하지 않은 이유’를 조사한 결과 ‘경제력에 자신이 없다’(41%)는 응답보다 ‘결혼하고픈 상대를 만나지 못했다’(47%)는 대답이 더 많았다.

결혼 상대를 만나지 못한 것은 1990년 거품경제 붕괴 이후 ‘잃어버린 20년’을 지나면서 가급적 지출을 줄이고 자기계발에 집중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미혼자들이 가파르게 늘어나자 지자체들이 직접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섰다. 미혼은 곧 저출산으로 이어지고 저출산은 육아산업을 사양길로 접어들게 만드는 등 일본 경제 전체의 활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도쿠시마(德島) 현은 올해 7월부터 매월 첫째 금요일에 젊은 직원들을 정시에 퇴근시키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야마가타(山形) 현은 5월 ‘결혼지원센터’를 열고 ‘배구를 통한 남녀 만남’ ‘독신 자위대와의 파티’ 등 독신남녀를 위한 행사를 연이어 열고 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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