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 증시상장 상반기 5곳뿐… 산업 성장판이 닫혀간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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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부품을 만드는 H사는 2010년부터 기업공개(IPO)를 준비해왔다. 주식시장에서 공모(公募)로 자금을 조달해 공장과 설비를 늘리기 위해서였다. 공모를 맡을 증권사와 협의해 IPO를 위한 재무구조 개선과 내부시스템 정비에 나섰다. 여기에 적지 않은 비용도 들였다.

순조롭던 작업은 올해 상반기 순이익 감소로 발목을 잡혔다. 지난해 매출액은 600억 원, 순이익은 30억∼40억 원이었다. 올 들어 매출액은 유지됐지만 경기침체 탓에 순이익이 10% 이상 줄었다. 이익이 감소 추세면 상장심사를 통과하기 어렵다. 이 회사는 증시 대신 은행을 찾았으나 불경기에 증설 비용을 빌려줄 곳은 없었다.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국내 중소기업들의 ‘성장 통로’가 막히고 있다. 중소기업은 양호한 실적과 금융권의 대출로 기초를 다지고, IPO라는 자본시장의 관문을 거쳐 중견기업으로 도약하는 게 성장의 통로였다.

김우진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한 계단 점프하려면 IPO가 꼭 필요하다”며 “경기 침체 탓에 중소기업에 대한 관심과 자금이 확연히 줄었다”고 말했다.

경기침체 속에 IPO는 급감하고 중소기업은 꽃을 피워보지 못한 채 시들고 있는 셈이다.

○ 중소기업엔 ‘그림의 떡’ IPO

중소기업에 IPO는 그야말로 ‘좁은 문’이다. 올해 상반기 국내 주식시장에서 이뤄진 IPO 9건 가운데 중소기업의 IPO는 5건으로 전체의 55.6%에 불과하다.

2001년 이후 꾸준히 80% 이상이던 중소기업 IPO 비중은 2008년 전체의 95.2%에 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70%대로 떨어진 데 이어 올해는 50%대로 내려앉았다.

경기 침체로 상장을 할 만한 중소기업 자체가 줄어든 데다 어렵게 상장한 기업들도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다 보니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는 분석이 있다.

실제 증시에 어렵게 입성한 새내기 중소기업들의 성적표도 저조하다. 올해 상반기 코스닥시장에 상장된 중소기업 5곳 중 3곳은 29일 주가가 종가 기준으로 공모가를 밑돌고 있다. 공모가 대비 주가 하락폭이 가장 큰 곳은 비아트론으로 주가가 1만1700원(29일 종가 기준)으로 내려앉으며 공모가보다 26%가량 빠졌다.

코스닥시장 전반적으로도 부진하다. 올해 7월 말까지 코스피는 3.08% 오른 반면 코스닥은 6.51% 떨어졌다. D식품업체는 “어렵게 상장해도 공모가 이하로 떨어질 것 같으면 상장을 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며 “사업 확대를 위해 2015년 상장을 생각하고 있지만 계속해서 코스닥시장이 부진해 고민”이라고 토로했다.

문제는 중소기업 IPO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탄탄한 중소기업도 자금조달 창구가 막히고 있는 것. 조양훈 한국투자증권 기업금융담당 상무는 “기관이나 개인투자자들이 IPO를 성공할 경우 추가로 투자하겠다는 조건을 내걸기도 한다”라며 “IPO가 물건너가면 자금 조달이 막히고 그 기업은 도약할 기회를 잃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은행 대출·회사채 발행도 어려워

전통적 자금 조달 수단인 은행 대출은 물론이고 회사채 발행도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은행의 기업대출은 7월 4조4816억 원 늘어 6월(6869억 원)보다 증가폭이 확대됐다. 그러나 이 가운데 중소기업 대출은 4854억 원에 그치고 나머지 3조9962억 원은 대기업 대출이었다. 이에 앞서 6월에는 중소기업 대출의 경우 은행의 분기 말 부실채권 정리 등으로 오히려 2339억 원 감소하기도 했다.

주요 자금 조달 통로인 회사채 시장에서도 중소기업은 찬밥 신세다. 1∼7월 중소기업의 일반회사채 발행금액은 250억 원으로 전체의 0.07%에 그쳤다. 이는 전년 동기(6427억 원·1.77%)보다 크게 감소한 수치. 평균적으로 전체 회사채 발행금액 가운데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1∼2%에 달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올해 중소기업의 상황이 극히 어려워졌다는 이야기다.

재고처리 비용 때문에 고민이라는 Y가구업체 관계자는 “은행의 대출기준이 까다로워진 정도가 아니라 중소기업에는 대출 자체를 하지 않으려는 상황”이라며 “우리처럼 비교적 큰 업체가 이 정도라면, 작은 업체들은 고금리의 제2금융권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김철중 기자 tnf@donga.com
#중소기업#증시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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