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이병기]‘정당 소비자 보고서’ 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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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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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기 경제부 차장
이병기 경제부 차장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번 주말경 처음으로 소비자 리포트를 내놓을 계획이다. 소비자의 올바른 선택을 돕기 위해 정부가 직접 나선 것이다. 첫 타깃은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원성이 자자한 아웃도어 제품 가운데 하나인 등산화다.

현실 세계에서는 어렵지만 4·11총선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소비자 리포트가 진짜 필요한 곳은 정당(政黨)이 아닐까 싶다. 정치 민주화 이후 약 20년간 우리 국민은 보수정권(김영삼, 이명박 정부)과 진보정권(김대중, 노무현 정부)을 똑같이 두 번씩 선택했다. 두 진영이 20년 동안 제공한 정책 서비스를 경험에 근거해 균형 있게 평가한 ‘정당에 대한 소비자 보고서’가 나올 조건은 무르익은 셈이다.

보고서의 백미(白眉)는 실패한 정책에 대한 분석이 될 것이다.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로 친다면 불량품과 부작용에 대한 보고서다.

보수정당에서 유효성이 떨어진 대표적 정책은 ‘성장이 만병통치약’이라는 주장과 ‘대기업 낙수(落水)효과’다. 두 정책은 한국의 압축적 경제개발 경험에서 입증됐고 주류 경제학이 논리적인 토대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이 두 정책은 약속한 효과보다는 양극화라는 부작용을 더 심화시켰다. 진보성향의 DJ 정부도 “윗목을 데워야 아랫목도 따뜻해진다”며 낙수효과를 주요 정책으로 채택했고 MB 정부는 친(親)대기업 정책으로 계승했지만 효과가 크지 않았다.

한국이 1960년대 본격적 경제개발에 착수한 뒤 30여 년간 높은 성장, 일자리, 평등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던 정책이 더는 먹히지 않았다. 글로벌화라는 거대한 흐름과 우리 경제의 선진화로 체질 자체가 변했기 때문이다. 국내외 조건과 환경이 변하면서 대기업, 중소기업, 근로자들 간의 상생의 구조가 약화됐다. 쉽게 말하면 ‘삼성과 현대에 좋은 것은 우리 모두에게도 좋은’ 경제 구조에서 ‘삼성과 현대에 좋은 것이 모두에게 좋다고 보장할 수 없는’ 경제 생태계로 바뀌었다.

진보 정당의 정책 중 부작용이 가장 컸던 정책은 의도만 좋으면 시장의 힘을 누를 수 있다는 ‘선한 동기 만능론’이다. 대표적 사례가 부동산 정책이다.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강남 부동산 값은 잡겠다”고 큰소리쳤던 노무현 정부의 정책은 서울 강남지역의 각 가정에 수억 원에서 수십 억원까지의 불로소득을 나누어 주는 뜻밖의 결과를 가져왔다. 수십조 원의 불로소득이 경제 불평등을 얼마나 심화시켰을지 계산해보면 선한 동기 만능론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다.

최근 재래시장을 살리겠다며 대형 유통업체를 무조건 규제하려는 흐름이 불길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런 경험 때문이다. 재벌 해체론도 DJ 정부의 실패한 벤처거품을 다시 떠오르게 만들어 불안하다.

지난 20년 한국경제의 분석에서 두 가지 교훈이 도출된다. 첫째, 모든 문제를 한방에 해결해주는 정책은 없다. 경제는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 복잡한 생태계라는 인식이 요청된다. 둘째, 보수와 진보 모두 열려 있는 인재의 수혈이 급하다. 소신으로 위장한 고집과 무식의 폐해가 너무 컸다. 과거 통하던 정책이라도 지금 안 맞으면 이를 인정하고 고칠 수 있는 마인드가 필요한 시대다.

이병기 경제부 차장 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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