年 8조4000억 게임산업 ‘3중규제’에 걸려 고사 우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8일 03시 00분


게임과 폭력 연관성 논란속 교과부까지 규제 추진
업계 “2중 심의 너무해… 중독예방 기금 이미 조성”


교육과학기술부가 6일 학교폭력 방지 종합대책의 하나로 발표한 게임 규제 계획에 대해 게임업계가 반발하고 있다. 게임과 폭력의 상관관계가 학문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가운데 정부가 게임을 학교폭력의 주범으로 몰고 있다는 것이다. 이중, 삼중 규제로 연간 8조4000억 원에 이르는 국내 게임 산업이 고사(枯死)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교과부가 내놓은 규제 계획은 △게임 시작 후 2시간이 경과하면 자동으로 게임이 종료되게 하는 ‘쿨링 오프(cooling off)제’ 도입 △게임 심의 기준 강화 △게임업계의 게임중독 치료를 위한 기금 출연 의무화 등 세 가지로 요약된다.

○ 게임과 폭력의 상관관계 논란


게임과 폭력의 연관성에 대해 학계의 의견은 엇갈린다. 미국 하버드대 의대 로렌스 커트너 박사와 셰릴 올슨 박사는 2007년 “폭력적인 비디오게임이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지 부정적인 영향을 줄지 판단할 수 없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는 미국 법무부의 지원을 받아 2년간 1200명의 아동과 500여 명의 부모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반면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대진 박민현 교수팀은 게임에 중독된 아이들의 뇌는 인지 능력과 감정 조절 능력이 무뎌져 폭력에도 둔감해진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이와 관련해 게임업계 관계자는 “게임에 대해 좀 더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연구 자료들이 축적되기도 전에 정부가 먼저 규제에 나서는 것은 문제”라고 주장했다.

○ 3중 규제의 덫에 빠진 게임산업


6일 발표된 교과부 안까지 국내에선 3개 부처가 이름만 다르고 내용은 비슷한 게임 규제 안을 들고 나왔다. 교과부는 초중고교생이 게임을 연속해서 2시간 넘게 하거나, 하루에 4시간 이상을 하면 게임 접속을 차단하는 쿨링 오프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에 앞서 문화체육관광부는 만 18세 미만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부모의 요청에 따라 게임 접속을 차단하는 ‘선택적 셧다운제’를, 여성가족부는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 만 16세 미만의 청소년의 게임 접속을 강제로 끊는 ‘강제적 셧다운제’를 도입했다. 초등학생 자녀가 있는 김모 씨(42·여)는 “정부가 한국의 학부모는 자녀의 올바른 게임습관을 가르칠 능력도 권한도 없다고 판단한 것 같아 불쾌하다”고 했다.

해외에서는 일방적으로 규제할 것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 게임의 역기능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이뤄져야 한다는 여론이 우세하다. 최근 방한한 미국 게임등급위원회(ESRB) 패트리샤 반스 의장은 “미국에선 게임 중독에 대해 부모가 교육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본다”면서 “게임 중독을 (흡연과 같은) 의학적인 의미의 ‘중독’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 2중 심의에, 기금 의무화


교과부는 문화부 산하에서 게임 심의를 담당하고 있는 게임물등급위원회와 별도로 학계, 교육계, 학부모 단체 등으로 구성한 게임심의위원회를 만들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문화부로부터 “폭력적이지 않다”고 인정받은 게임이라도 교육부의 심의를 한 번 더 거치라는 것이다.

게임업계에선 교과부가 이번에 내놓은 ‘게임중독예방기금 의무화 방안’에 대해서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이고 있다. 게임업계는 이미 자발적으로 게임문화재단을 통해 게임중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금 100억 원가량을 조성해 놓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2009년 이후 정부가 게임 규제에 나서며 국내 게임 제작건수가 매년 15% 이상 감소하고 있다”고 밝혔다. ‘온라인게임 1위 국가’의 자리는 이미 2009년에 중국에 내줬다.

정진욱 기자 cool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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