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km/h 헐떡임 없이…” 1억짜리 ‘투아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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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24일 10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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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한포기 없는 거친 사막을 한줄기 바람처럼 가르며 질주하는 ‘사막의 제왕’.

2009년 1월 21일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외곽. 멀리서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차량 한 대가 쏜살같이 달려왔다. 차량이 점점 가까워져 사람들의 시야에 들어왔을 때 웅성거림은 비로소 환호로 바뀌었다. 결승선을 통과한 차량에 찬사가 쏟아졌다. ‘지옥의 레이스’라고 불리는 다카르 랠리(Dakar Rally) 30년 역사상 처음으로 디젤 차량이 우승을 차지한 순간이다. 이후 3년째 폭스바겐 투아렉은 우승컵을 내주지 않고 있다. 아르헨티나와 칠레의 사막, 계곡, 산길, 비포장도로 9574km를 18일간 쉼 없이 달려 결승선에 제일 먼저 도착한 투아렉은 이후 SUV의 험로주행과 내구성을 대표하는 이름이 됐다.

투아렉은 이외에도 155톤의 보잉 747기를 줄로 묶어 끌었는가하면, 해발 6081m의 눈 덮인 안데스산맥을 달려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오른 자동차가 됐다. 2005년엔 지구 360도 돌기에 도전해 단 한 번의 고장 없이 7만6451km를 주행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폭스바겐 패밀리룩에 충실한 디자인

2002년 출시된 투아렉은 전 세계에서 50만대이상 팔린 럭셔리 SUV시장의 베스트셀링카이다. 이번에 시승을 위해 만난 투아렉은 올해 국내 출시된 2세대로 4134cc V8 디젤 직분사 엔진을 장착한 TDI R-라인 모델이다. R-라인은 고성능을 의미한다. 투아렉을 본 첫 느낌은 한마디로 ‘간결하고 단단하다’였다.

신형 투아렉을 디자인한 폭스바겐 디자인실 총괄책임자 발터 드 실바는 “SUV를 운전한다는 것은 어떠한 조건에서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편안함을 의미한다”고 정의한 뒤 “신형 투아렉은 빈틈없고 신뢰할 수 있지만 과시하지 않는 친근함과 간결함을 강조한 100% 폭스바겐 유전자를 가진 SUV”라고 설명했다. 기자가 실제로 본 투아렉도 드 실바의 설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1억 원이 넘는 럭셔리 SUV치고는 화려하지 않았다.

2세대 투아렉 디자인의 가장 큰 특징은 날렵하고 간결하면서도 눈에 띄는 화려함을 배제했다는 점이다. LED 전조등과 고유의 L자형 후미등, 로고와 이어진 3선 라이에이터 그릴 등은 폭스바겐 패밀리룩을 그대로 따랐다. 언뜻 골프나 제타와 닮았다. 부드럽고 우아한 앞뒤와 달리 둥글면서도 일직선으로 쭉 뻗은 옆 라인은 강인한 근육질 전사의 느낌이다.


#모순된 목표의 결과물 투아렉
신차의 크기는 길이 4755mm, 폭 1940mm, 높이 1735mm로 1세대에 비해 커졌다. 특히 휠 베이스가 2893mm로 41mm 늘어나 내부 공간이 넓어졌다. 전체적으로 차체가 낮고 넓어져 스포티하고 편안한 주행이 가능하다.

폭스바겐 기술진들은 신형 투아렉을 개발하면서 ‘어떤 한 가지를 위해 다른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다소 모순적인 목표를 세웠다. 가령 내부 공간은 키우고 강성을 높이면서도 무게를 줄이고, 주행성능은 높이면서 연비를 개선하고, 오프로드를 잘 달리면서도 온로드에서 안락한 승차감을 만드는 식이다. 그러나 이런 불가능할 것 같은 목표들을 폭스바겐은 기술혁신으로 극복해냈다.

전 세대보다 무게를 최대 201kg 줄였는데, 이는 디자인 수정과 부품교체, 엔진 개량을 통해 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틀림 강성을 이전 모델보다 5%가량 향상시켰다. 연비는 무려 45%(7.2km/ℓ→10.4km/ℓ)나 높아졌다.

투아렉의 최대 출력은 340마력이고, 최대 토크는 엔진회전수 1750rpm~2750rpm에서 무려 81.6kg.m에 이른다. 실제로 시속 140km를 넘어가도 엔진회전수는 2000rpm 언저리를 맴돌았다. 정지상태에서 100km/h까지 5.8초면 다다르고, 안전 최고속도는 242km/h이다. 2445kg의 차체무게를 감안한다면 거의 날아다니는 수준이다. 풀타임 4륜 구동에 폭스바겐 최초로 8단 자동변속기를 채택했다.

#180km/h 가볍게 찍고 전혀 헐떡거림 없어
시동을 걸자 의외로 엔진소리가 조용했다. 뭔가 박력 있고 거친 짐승의 숨소리를 기대했는데 조금은 아쉬운 마음까지 들었다. 시승은 서울을 출발해 경기도 남양주를 거쳐 경북 상주 백화산까지 다녀오는 약 550km 구간이다. 주말 서울 도심을 힘들게 빠져나와 고속도로에 올랐다. 서서히 속도를 높이자 속도계는 어느새 180km/h를 가볍게 찍는다. 투아렉은 조금의 헐떡거림도 없이 더 달릴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계기판의 끝인 280km/h까지 달려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날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120km/h에 크루즈 컨트롤을 맞췄다. 크루즈 컨트롤은 0~250km/h까지 운전자가 원하는 속도를 결정할 수 있다. 또한 앞차와의 거리 설정 기능을 이용하면 자동으로 앞차와 일정 간격을 유지하면서 따라가고 알아서 멈추기까지 한다. 크루즈 컨트롤을 쓰자 연비가 14km/ℓ 내외로 좋아졌다.

구불구불한 국도에 들어서 변속기를 스포츠(S) 모드에 맞췄다. 하체가 단단해지고 스티어링은 더욱 민감했다. 정상모드와 울퉁불퉁한 노면 충격이 여과 없이 전해졌다. 가속 페달을 깊숙이 밟자 오르막 급커브를 거침없이 치고 올라간다. 연이은 커브에 급한 제동과 가속을 반복했다. 브레이크가 밀리지 않고 좌우 밸런스가 잘 잡힌 느낌이다.

목적지에 도착해 차를 다시 한 번 꼼꼼히 살펴봤다. 크게 흠잡을 곳이 없다. 그래도 굳이 지적한다면 시승 내내 폭스바겐이 개발한 순정 내비게이션은 불편했다. 국내 도로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한글 입력이 어려웠다. 상세한 지명이나 아파트가 제대로 검색되지 않았다.

#100ℓ 연료탱크, 서울-부산 왕복하고도 남아
투아렉은 큰 덩치에 어울리게 100ℓ짜리 대형 연료탱크를 갖고 있다. 장거리 여행을 위한 설계다. 시승을 마치고 다시 서울에 도착했을 때 꽉 채워졌던 연료는 절반가량 남았다. 그대로 다시 출발해도 강릉을 다녀올 수 있는 양이다. 배기량 4.2ℓ의 거함급 SUV임을 감안할 때 뛰어난 연료 효율이다. 이전에 시승했던 미국산 대형 SUV들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국내에 판매되는 투아렉은 두 종류다. 4.2ℓ외에 3.0ℓ V6 TDI 블루모션이 있다. 2967cc에 240마력, 최대 토크 56.1kg.m의 힘을 낸다. 공인연비는 ℓ당 11.6km. 8단 자동변속기를 장착했다.

장점을 많이 가졌지만 가격은 조금 부담스럽다. 국내 판매가격은 4.2ℓ모델이 1억1470만원, 3.0ℓ는 8090만원이다.

조창현 동아닷컴 기자 c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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