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은행 감사로 내정된 이석근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가 6일 사의를 밝힘에 따라 현재 금융회사 감사로 있는 금감원 출신자들의 거취에도 관심이 쏠린다.
이 전 부원장보는 아직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제한 여부 확인 심사 절차가 남아 있지만, 감사 선임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상태인 만큼 사실상 자진해서 물러난 셈이기 때문이다.
주주총회 시즌을 맞은 보험사, 카드사, 증권사의 감사 가운데 이번에 임기가 만료되는 금감원 출신 인사의 상당수는 재선임되지 못하거나 스스로 고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아직 임기가 남은 금감원 출신 감사마저 자리를 내놓을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다만 금감원 출신의 `낙하산 감사'만 제한하는 것은 감사원, 검찰, 한국은행 등다른 기관 출신의 감사 자리만 늘리는 꼴이 될 수 있는 만큼 금융회사 감사 제도의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금감원 출신 저축은행 감사, 10년간 84명=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현재 은행, 보험, 증권, 카드, 저축은행의 감사로 재직 중인 금감원 출신 임직원은 이날 신한은행 감사 내정자직에서 물러나기로 한 이석근 전 금감원 부원장보를 포함해 45명이다.
은행권에서는 박동순 전 거시감독국장(국민은행), 조선호 전 총무국장(하나은행), 고영준 전 조사2국장(SC제일은행), 김종건 전 리스크검사지원국장(한국씨티은행)등 시중은행은 물론 지방은행까지 포함해 전직 국장급 7명이 포진해 있다.
제2금융권에서도 보험사에 6명, 증권사에 15명, 카드사에 4명, 저축은행에 10명씩 전 금감원 직원이 감사를 맡고 있다.
특히 저축은행의 경우 지난 10년간 감사로 재직한 금감원 출신이 84명에 달하는 등 금융회사 감사는 금감원 출신자의 `동문회'라는 말이 나올 정도.
이 전 부원장보는 공직자윤리위의 심사를 통과하는 데 문제 될 게 없는 상황에서 그만둔 것이라 이 같은 전후 사정을 고려해 재취업을 스스로 포기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금감원 조직과 직원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금감원 관계자는 "지난달 26일 공직자윤리위의 심사가 유보된 것도 같은 배경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고 전했다.
이 전 부원장보를 감사로 내정한 신한은행은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본인이 자리를 내려놓은 만큼 어쩔 수 없지 않느냐"며 "여러 가지 대안을고민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금융권, 금감원 출신 감사 영입작업 '올스톱'=금감원이 금융회사에 감사를 내려 보내는 '감사추천제'를 전면 폐지하면서 금융회사의 감사 선임에도 비상이 걸렸다. 금감원 관계자는 "각 금융회사가 감사추천제에 맞춰 진행 중이던 감사 선임 작업은 모두 백지화됐다"고 말했다.
특히 임기가 만료되는 금감원 출신 감사를 둔 금융회사는 고민에 빠졌다. 개별 금융회사의 감사 선임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게 금감원의 공식 입장이지만, 사실상 금감원 출신 감사의 재선임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분위기이기 때문.
이에 따라 각 금융회사는 당장 다른 적임자를 물색해야 해 일대 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5¤6월 주총 시즌을 맞은 제2금융권이 먼저 시험대에 올랐다.
금감원 비은행검사2국장 출신 소순배 감사의 임기가 만료되는 신한생명은 될 수있으면 금감원 출신을 배제하고 감사 후보를 물색하기로 했다. 금감원 저축은행 검사팀장 출신 이철종 감사의 임기가 만료되는 KB자산운용도 금감원 출신은 감사로 선임하지 않을 방침이다.
오는 7월 감사의 임기가 만료되는 알리안츠생명 관계자는 "감사 선임은 주총 안건이고, 현재 특별히 진행된 사항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밖에 금감원(옛 증권감독원 포함) 출신 감사 16명의 임기가 만료되는 증권업계에서도 상당수가 재선임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금감원 출신 감사들 '좌불안석'…부작용 우려도=이 전 부원장보의 사임으로 이제 막 선임됐거나 아직 임기가 남은 금감원 출신 감사 중에서도 사임하는 감사가 나오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일단 해당 금융회사들은 현재 선임된 감사들이 공직자윤리위의 심사를 통과했고, 정당한 절차를 밟아 선임됐다는 입장이다. 다만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다는 것.
2001년 이후 금감원 출신이 감사를 맡아 온 하나은행의 고위 관계자는 "금융당국 출신이 감사로서 능력이 있어서 그런 것이지 다른 뜻은 없었다"며 "감사가 당장 바뀌는 일은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감사들의 신변은 개인이 알아서 결정할 문제다"고 말했다.
해당 감사들은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금융회사의 금감원 출신 감사는 "감사로서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겠다"면서도 기자에게 "다른 금융회사의 감사는 동향이 어떤지 궁금하다"고 되물었다.
일각에서는 금감원 출신 감사를 무조건 배제하는 게 결국 다른 정부부처나 기관의 '낙하산 감사' 자리를 만드는 데 불과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반사이익'을 얻는 다른 기관에서 감사 자리를 노리고 들어오면 더 곤란한 일들이 많이 생길 가능성이 커 걱정된다"고 말했다.
금융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이 기회에 감사 제도를 비롯한 금융회사의 내부통제기능을 전반적으로 정비해야 한다"며 "최근의 변화가 얼마나 오랫동안 유지되고 실질적으로 지켜지는지 지켜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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