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층 돕자던 기부펀드들 ‘빛 좋은 개살구’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4월 25일 03시 00분


코멘트

나눔-디딤돌 펀드들 판매 썰렁… 유령펀드 전락

“무슨 펀드라고 하셨어요? 어디서 그런 말을 듣고 오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기부하는 펀드를 판다는 얘기는 처음 들어 보는데요….”

최근 서울의 한 대우증권 지점을 찾아 펀드 수수료 일부를 저소득층 장학사업이나 혼자 사는 노인에게 기부하는 ‘나눔 펀드’에 가입하고 싶다고 하자, 상담원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산은 2020증권투자신탁’이라고 펀드명을 가르쳐줘도 한참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전화를 돌리더니 “상품 약관만 봐선 기부가 어떻게 되는지 잘 모르겠고 펀드 자체도 저희가 주력으로 추천하는 게 아니다”라며 다른 펀드상품을 권했다.

지난해 말 금융투자협회와 일부 운용사들이 펀드 투자금액 일부를 소외계층에 기부하는 상품이라며 내놓았던 ‘나눔·디딤돌 펀드’가 판매직원도 모르는 유령 펀드로 전락하고 있다.

○ ‘설정액이 겨우 100만 원’


지난해 말 금융투자협회 주도로 만들어진 ‘나눔·디딤돌 펀드’에 참여한 운용사는 산은, 신한BNP파리바, KB, 우리 총 네 곳. 판매처는 산은 대우증권 신한은행 국민은행 우리은행 등 다섯 곳이다. 대형판매처를 뒀지만 현재 이 펀드들의 설정액은 민망한 수준이다. 올 초 나온 ‘산은 2020증권투자신탁1[주식]C-d’는 100만 원부터 집계되는 펀드 통계에서 설정액이 계속 ‘0원’으로 잡히다 최근 겨우 100만 원을 넘겼다.

지난달 출시된 우리자산운용의 ‘우리프런티어배당주안정증권투자신탁1[채권혼합]C-d’ 역시 100만 원에 불과하다. 두 종류 클래스로 펀드를 내놓은 신한BNP파리바의 ‘신한BNPP Tops아름다운SRI증권투자신탁1[주식]’은 각각 1400만 원, 5900만 원을 모으는데 그쳤다. ‘KB스타한국인덱스증권투자신탁(주식)C-D’가 110억 원가량을 모아 체면치레를 했다. 금투협 관계자는 “기부를 앞세운 투자상품의 한계를 짐작은 했지만 반응이 이렇게 썰렁할 줄은 몰랐다”고 털어놨다.

○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생색내기용 상품


운용사들이 내놓은 ‘나눔·디딤돌 펀드’는 신상품이 아니라 모두 기존 펀드에서 수수료 체계만 약간 바꿔 내놓은 것이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잘되면 좋겠지만 잘 안 돼도 별 타격이 없다”고 말했다. 판매사 입장에서도 굳이 열심히 팔 이유가 없다. 나눔 펀드는 기부 펀드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비슷한 클래스 상품보다 수수료를 약간 낮게 책정했기 때문이다. 신한은행의 한 상담원은 “펀드환매가 줄을 잇는 마당에 수수료까지 낮은 것을 팔 이유가 없다”고 했다.

특히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수수료를 할인해주는 ‘우리프런티어배당주안정증권투자신탁1[채권혼합]C-d’는 업계에서도 ‘황당하다’는 반응이 많다. 펀드를 운용할 저소득층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것이다. 금투협은 당초 참여 운용사의 수를 늘리고 추가상품을 내놓겠다고 했지만 싸늘한 반응에 이도저도 못하며 눈치만 보는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이제 와서 없앨 수도 없어 고민이다”고 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