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기자의 That’s IT]골리앗에 맞설 다윗 기업 ‘남과 다른 생각’이 무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2월 9일 03시 00분


코멘트
1980년대에 IBM은 정보기술(IT) 업계를 대표하는 악당이었습니다.

딱히 나쁜 짓을 한 건 아니었지만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MS) 같은 작은 회사는 미국 동부 뉴욕에 자리 잡은 거대 기업 IBM을 성경에 등장하는 거인 골리앗으로 묘사했죠. 심지어 애플은 자신들의 TV 광고에서 IBM을 감시사회의 ‘빅 브러더’로 지목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은 애플이 아니라 MS였습니다. 이들은 IBM에 MS-DOS라는 운영체제(OS)를 파는 작은 회사였는데 결국 이 OS 장사가 IBM이 만드는 컴퓨터 판매보다 수지맞는 사업으로 성장한 겁니다. 문제는 그때부터였습니다. 다윗이 스스로 골리앗으로 커나간 것이죠. MS는 이후 윈도 OS에 메신저와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끼워 파는 등 독점적 영향력을 부당하게 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MS에 맞설 새로운 다윗을 기다렸습니다. 이런 식의 선악 구도는 늘 재미있는 옛날이야기처럼 흥미진진하니까요. 그때 구글이 등장했습니다. 2004년 기업공개로 자금을 끌어 모은 구글은 MS가 비싼 값에 팔던 사무용 문서작성 프로그램 MS오피스를 대체할 수 있는 ‘구글 문서도구’라는 프로그램을 공짜로 배포하기 시작했습니다. MS의 윈도 OS를 대체할 ‘크롬’ OS도 무료로 나눠 줬죠. 게다가 구글의 모토는 ‘악해지지 말자’였습니다. 새로운 다윗의 등장에 사람들은 환호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제 새로운 다윗을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이런 다윗의 이미지는 늘 미국 기업이 차지합니다. 미국 시장에서 일본의 도요타자동차가 1위를 하고, 삼성전자가 가장 많은 TV를 팔아도 이들은 다윗으로 주목받지 못합니다. 미국 국적이 아니어서라기보다는 이들이 다윗의 방식으로 골리앗을 물리치지 못했기 때문일 겁니다. MS는 기계 대신 소프트웨어를 팔아 IBM을 물리쳤고, 구글은 MS가 돈을 받고 팔던 소프트웨어를 공짜로 풀어 MS를 위협합니다. 하지만 도요타는 미국차보다 싸고 품질 좋은 차를 만들었고 삼성전자는 미국 TV보다 싸고 품질 좋은 TV를 만들 뿐이었죠.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마이클 포터 교수는 15년 전인 1996년에 “일본 기업에는 전략이 없다”고 선언한 바 있습니다. 그가 말한 전략의 핵심은 ‘남과 다른 생각’입니다. 일본 기업은 미국 기업처럼 생각하면서 더 효율적으로 일했을 뿐이라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어렵다는 얘기였죠. 반면 MS나 구글 같은 회사는 모두 시장의 1위와 경쟁하면서도 ‘더 싸고 품질 좋은 제품’이 아닌 경쟁자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경쟁했습니다.

15년 만에 일본 기업은 한국 기업에 위협받고 있습니다. 반면 한때 일본 기업의 추월을 걱정하던 미국 기업은 지금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냈습니다. 15년 뒤 한국에서도 ‘MS의 다음 타자’가 나오기 위해서는 지금 누군가가 “한국 기업에는 전략이 없다”고 선언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