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유값 절반이 세금… 환율-관세도 올라 “폭리? 글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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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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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소 묘하다” MB 발언 계기로 살펴본 기름값

《 정부가 물가 관리의 첫 번째 목표로 기름값을 겨냥하면서 기름값의 적정성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기름값이 적정 수준인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주유소 행태가 묘하다”고 말한 것은 일반 소비자들도 궁금하게 여기는 부분이다. 마침 14일 가정용 프로판 가스와 차량용 부탄 가격도 2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기름값의 진실을 따져봤다. 》
○ 기름값, 적정 수준인가?

국제유가가 하늘을 찔렀던 2008년 7월과 비교하면 최근 국제유가는 많이 떨어졌는데, 한국의 기름값은 별로 낮아지지 않았다는 것이 이 대통령의 지적이다.

휘발유 국제가격은 2008년 7월 L당 864원이던 것이 지난해 12월에는 722원으로 떨어졌다. 세금을 제외한 국내 휘발유 가격은 같은 기간 938원에서 784원으로 떨어졌다. 가격 인하폭이 16.4%로 같았다.

업계는 3가지 변수를 감안하면 실질적으로는 국내 유가가 더 많이 떨어졌다고 주장한다. 변수는 관세, 유류세, 환율이다. 2008년 1%였던 관세는 2009년 3%로 올라 L당 11원 정도의 가격인상 효과를 냈다. 관세를 감안하면 국내 휘발유 가격 인하폭은 17.5%로 추산된다. 2008년에는 정부가 고유가 대책으로 한시적으로 유류세도 깎아줘 지금보다 L당 70원 정도 낮았다. 환율도 지금이 달러당 120원 정도 높다.

정유업계는 “변수 3가지가 모두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국내 기름값이 많이 내려 정유업계의 이익률은 바닥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2010년 1∼3분기에 국내 4대 정유업체의 정유부문 누적 매출액은 63조 원이 넘지만 영업이익은 1조 원이 안 된다.

반면 2010년 한 해 동안 국내 휘발유가가 국제가보다 인상액이 높았다는 분석도 있다. 소비자시민모임이 지난해 국제 휘발유 가격과 정유사의 공장도가격 및 전국 주유소 평균가격을 비교 분석한 결과 국내 정유사는 국제 휘발유가 인상액보다 휘발유 공장도가를 L당 38원, 주유소의 소비자가를 29원 더 올린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정유업계는 최대한 적정한 기름값을 매기고 있다고 주장한다. 만일 기름값이 부적절하다면 그 이유는 오히려 정부에 있다는 입장이다. 기름값에서 교통에너지환경세, 교육세, 주행세, 부가가치세가 합쳐진 유류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높아(휘발유 50%, 경유 41%, LPG 33%) 기름값을 낮출 여지가 없다고 본다.

○ 주유소의 행태가 묘하다?

기름값이 오르면 주유소가 이득을 보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경기지역에서 주유소 두 곳을 운영하는 A 사장은 대뜸 “정권 바뀌고 주유소가 다 죽었다”고 말했다. 주유소는 물가 정책보다는 에너지 정책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자꾸 물가를 잡겠다면서 주유소를 죽인다는 주장이다.

A 사장에 따르면 정유사가 주유소에 공급하는 기름값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바뀌고, 주유소는 공급가와 주변 주유소의 가격을 감안해 수시로 가격을 바꾼다. 서울은 상대적으로 기름값이 높게 책정된 반면 수도권과 지방은 가격 경쟁이 너무 치열해 마음대로 가격을 정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최근 인건비, 영업비 부담이 커져 주유소 마진이 5% 이하로 떨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가장 큰 문제는 신용카드 수수료라고 말했다. 주유소 고객의 95% 정도가 신용카드로 결제하는데, 한 달 매출이 6억 원이라면 카드 수수료만 900만 원이다.

서울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B 사장도 “기름값은 올라가도 마진 액수는 거의 똑같다. 매일 인터넷에 가격이 공개되는데 마진을 올리면 버틸 수가 없다. 고객들한테 욕먹으면서 세금, 카드수수료, 영업비만 더 나간다”고 말했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 소비자들이 ‘묘한 행태’로 의심하는 것 중 하나는 “국제유가가 오르면 주유소 기름값이 바로 오르는 것 같은데…. 왜 국제유가가 내려도 주유소는 기름값을 잘 내리지 않는 걸까”라는 의문이다. 이에 대해 정유업체는 “약 2주의 간격을 두고 국제 석유제품 가격의 등락폭이 대체로 반영된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기름값 인상에는 적극적, 인하에는 소극적인 주유소도 적지 않다.

○ 기름값 내릴 방법은 없나?

현실적으로 기름값을 내릴 방법은 ‘없다’는 답이 유력하다. 국내 기름값은 국제 시세에 연동되므로 인위적으로 가격을 조정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부득이하게 조절할 수 있는 부분이라면 세금뿐이다. 하지만 세수의 15%가량을 차지하는 유류세를 정부가 내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소비자단체는 정부와 정유업체 모두 기름값 인하에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서혜 소비자시민모임 팀장은 “정유사와 주유소는 유가 인상기에 마진폭을 추가로 높이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며 “정부도 유가 상승기에는 유류세를 낮춰 소비자 부담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 업계 “올 것이 왔다… 얼마나 내려야 하나” ▼

겁나는 기름값 최근 유가가 치솟자 이명박 대통령이 유류가격이 적당한지 검토하라고 지시한 가운데 1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의 한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2000원이 넘는 가격에 팔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겁나는 기름값 최근 유가가 치솟자 이명박 대통령이 유류가격이 적당한지 검토하라고 지시한 가운데 1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의 한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2000원이 넘는 가격에 팔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정부의 기름값 인하 압박에 정유업계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며 긴장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13일 기름값 문제를 지적하고 공정거래위원회가 주유소 현장조사에 나선 데 이어, 14일 기획재정부도 석유가격 대책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겠다고 밝히자 ‘어떻게든 기름값을 내려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는 분위기다.

정유업체들은 일단 기름값을 내릴 수 있는 모든 방안을 고민해 보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부가 몰아붙이는 강도가 심상찮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실제로 액화석유가스(LPG) 업계의 경우 지난해 말 정부의 간접적인 압박이 들어옴에 따라 당초 20%로 계획했던 1월 가격 인상률을 10% 선으로 낮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정유업체 임원은 “마른 수건이라도 짜야 할 분위기다. 국내 정유 마진은 L당 10∼20원으로 낮은데 이마저도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며 “전체 주유소 가운데 정유사의 직영 주유소가 17%인데 직영이라도 주변 자영 주유소와의 경쟁 때문에 가격을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있어 정유사는 사실상 주유소에 대한 가격통제권도 없다”고 말했다.

정유업체의 최대 고민은 과연 기름값을 얼마나 내려야 정부와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있느냐는 것이다. 설령 정유 마진을 완전히 포기한다 하더라도 소비자들이 L당 10∼20원의 가격 인하로 유가 인하 효과를 체감하지 못할 것이란 점이 문제다. 유류세를 손질하지 않는 이상 L당 수백 원을 인하하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유업계는 물가가 뛸 때마다 정유사와 주유소가 폭리의 주범으로 오해받는 것은 억울하다는 분위기다. 한 정유업체 관계자는 “석유제품 가격은 국내 산업 가운데 가장 투명하다. 반도체나 철강 공급 가격을 공개하는 것 봤나? 우리는 폭리를 취할 수 없는 구조다”라고 말했다. 외국투자 자본이 많이 들어와 있는 정유업계의 특성상 해외 투자자들이 국내 정유시장을 기형적으로 보는 것도 장기적으로 마이너스가 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 체감효과 낮았던 고유가대책, 이번에는…

정부에 고유가 대책은 사실 ‘답이 없는 숙제’다. 2008년 이후 국제 유가가 오를 때마다 각종 대책을 내놓았지만 실효성 논란 및 재원 부담 등의 이유로 큰 성과를 보지 못했다.

2008년 국제 유가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이로 인해 무역수지마저 악화될 위험을 보이자 정부는 대책을 쏟아냈다. 기획재정부는 3월 유류세 10% 인하 대책을, 지식경제부는 4월 ‘신(新)고유가 시대 에너지 절약 대책’을, 6월에는 정부 합동으로 고유가 민생 종합대책을 발표했지만 국민이 체감하는 효과는 미미했다. 유류세의 경우 세금 인하에도 불구하고 유가가 급등하면서 가격 인하 효과가 미미했고, 유가 상승으로 부가가치세(10%) 금액이 덩달아 오르면서 소비자들은 대책의 효과를 거의 실감하지 못했다. 당시 정부는 일반 주택의 실내 냉난방 온도를 제한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지만 정부 내에서조차 “현실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2008년 4월부터는 전국 주유소의 기름값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주유소정보 종합사이트 ‘오피넷’이 문을 열었다. 당초 정부는 가격 경쟁을 유도해 기름값을 내릴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같은 목적으로 도입된 대형마트 셀프 주유소는 지역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었지만 인근 주유소들의 반발 및 대기업슈퍼마켓(SSM) 이슈와 맞물려 현재 주로 지방에서 제한적으로 운영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정부의 한 관계자는 “현재 원가와 세금을 제외하면 정유사들이 움직일 수 있는 가격 폭은 L당 채 몇십 원이 안 된다”며 “소비자들이 가격 인하를 체감하려면 최소 100원, 200원은 낮아져야 하는데 업체들에 적자를 보라고 강요할 수도 없지 않느냐”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1.5%인 카드수수료를 인하하자는 의견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특정 업종만 카드수수료를 내리는 것도 문제”라며 “결국 고유가가 계속되면 에너지 절약밖에 답이 없다”고 말했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미친기름값 때문에 ‘무폴 주유소’ 찾는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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