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년 뱅커-최장수 금융CEO ‘쓸쓸한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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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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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졸 신화’ 라응찬 신한금융 회장

“뒷모습까지 아름다웠다면….”

라응찬 신한금융그룹 회장(72·사진)에 대해 많은 금융권 관계자들은 탄식한다. 한국 금융계의 거목(巨木)으로 평가받던 라 회장이 30일 신한금융 이사회에서 51년간의 은행원 생활을 접고 물러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자진 사퇴의 형식을 취하지만 불명예 퇴진이나 다름없다. 라 회장의 심경은 “나름대로 올곧게 산다고 살아왔는데 마지막에 이런 일이 생겨 죄송하기 짝이 없다”는 최근 그의 말처럼 착잡하기만 하다.

비록 신한금융 사태의 장본인이라는 오점을 남겼지만 라 회장은 은행권 판도를 뒤흔들며 신한금융을 국내 최고의 금융그룹으로 일군 주역이다. ‘조상제한서(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로 불리는 5대 시중은행 체제가 굳건했던 1982년 점포가 달랑 3개뿐인 ‘꼬마은행’ 신한은행의 놀랄 만한 성장을 예견한 이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2002년 굿모닝증권, 2003년 조흥은행, 2006년 LG카드를 잇달아 인수하면서 신한금융을 은행과 비(非)은행의 포트폴리오가 가장 안정적이면서 수익성은 뛰어난 금융회사로 육성했다.

금융권 최장수 최고경영자(CEO) 기록도 세웠다. 1991년 신한은행장이 된 이후 3연임을 했고, 신한은행이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한 2001년부터 신한금융 회장을 3연임한 데 이어 올해 3월 네 번째 연임에 성공했다. 그의 성공가도에 동참했던 신한금융 임원들의 뇌리에는 1991년의 기억이 또렷이 남아 있다. 라 회장은 취임식 후 회식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상고를 졸업하고 은행원이 돼 최고 자리까지 올랐는데 더 이상 무슨 영광을 바라겠는가. 내 몸을 다 태워 신한은행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떠날 때는 재가 돼서 떠나겠다.”

자신의 말처럼 라 회장은 학연, 지연, 혈연으로 얽힌 한국 사회의 출세 방정식을 깨고 ‘고졸(高卒) 성공 신화’가 무엇인지 몸으로 보여줬다. 경북 상주의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 선린상고 야간부를 졸업한 뒤 각종 역경을 딛고 신한금융의 CEO에 오르기까지 그의 인생역정은 신화의 서술 구조를 닮았다. “신한은행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학연, 지연, 인사 청탁을 배제하고 모든 직원을 능력대로 대우했기 때문이다.”(2004년 4월 기자간담회)

신한금융 사태에서 라 회장과 대립각을 보인 신상훈 신한금융 사장마저도 “나와는 아무 연고가 없는 사람이고 출신지도 다른데 나를 끝까지 믿고 챙겨준 분”이라고 말한다.

라 회장은 은행의 영업문화를 바꾸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198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은행 창구에는 은행원과 고객을 가르는 철창이나 유리벽이 있었다. 고객은 ‘갑’이 아니라 철저히 ‘을’이었던 시절. 대출을 받으려면 으레 ‘커미션’(사례금)을 내놔야 했다. 1982년 출범한 신한은행 점포는 지금처럼 고객 위주의 모습을 갖췄다. 지점 직원들이 허리 통증을 호소할 정도로 혹독하게 인사 훈련을 시켰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기업여신관리시스템, 개인신용평가시스템 등을 도입하면서 커미션이 없는 은행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신한금융 임직원은 이런 문화를 ‘신한 웨이(Shinhan Way)’라고 부르며 은행 배지에 이 문구를 새겨 달고 다닌다.

또 라 회장은 박태준 명예회장이 정치권의 온갖 청탁으로부터 포스코를 보호해서 오늘의 포스코를 만들었듯이 ‘관치금융의 압력’에서 신한은행을 지켜낸 인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그의 아킬레스건은 차명계좌였다. 1995년 박계동 당시 민주당 의원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신한은행에 예치돼 있다”고 폭로한 뒤 신한은행이 금융실명제법을 어기고 차명계좌를 관리해 줬다는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은행장 퇴진론이 거론됐다. 당시 금융당국은 “진정한 뱅커(은행원)를 키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느냐”며 라 회장을 보호했다.

지금은 다르다. 차명계좌와 관련해 보호막이었던 금융당국은 그에게 중징계 방침을 전했다. 한때 절대지지 세력이었던 재일교포 주주들도 즉각 사퇴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사면초가다.

불행은 지난해부터 예고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의혹 수사 과정에서 라 회장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 50억 원을 전달하면서 차명계좌를 이용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게 화근이었다. 불행의 또 다른 씨앗은 네 번째 회장 연임이다. 그의 재임 기간이 길어지면서 후계구도를 둘러싼 권력투쟁이 신한금융 사태로 이어졌다. 은행권에선 “신한금융의 30년 성공 스토리도 결국 모래성 아니냐”는 비아냥도 나온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절대적 영향력을 가진 한 사람이 대기업 ‘오너’처럼 군림하면서 파생된 문제인 만큼 반드시 개선돼야 할 문제”라면서도 “라 회장이 국내 금융산업 발전에 큰 기여를 한 것은 분명한 만큼 시간이 지나면 그의 업적도 다시 평가받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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