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의 업무 만찬은 신라왕들이 귀빈들 을 위한 연회를 베풀던 ‘안압지’에서 열렸다. 경주=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신라의 달밤’도 환율전쟁의 열기를 다 식히지는 못했다.
경주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에 참석한 각국 대표들은 22일 환율 문제로 어느 때보다 격렬한 토론을 벌인 뒤 오후 7시부터 경북 경주시 인왕동에 있는 ‘안압지(雁鴨池)’에서 업무만찬을 가졌다. 구름 사이를 오가는 보름달이 만찬장을 비추자 참석자들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회의장인 경주 힐튼호텔에서 9km 떨어진 안압지는 674년 신라 문무왕이 만든 정원으로 왕실에서 귀하게 여기는 새, 짐승, 화초 등을 기르던 곳. 정부가 “쌀쌀해진 날씨 때문에 참석자들이 추위를 느낄 것”이란 우려에도 불구하고 ‘안압지 만찬’을 강행한 것은 신라 천년 고도(古都)인 경주의 문화를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의지가 실린 것이다.
이날 안압지 입구에는 신라군 복장을 한 50여 명의 대학생이 참석자들이 입장할 때마다 ‘충의(忠義)’를 외쳤다. 또 만찬장까지 이동하는 길에는 대나무 기둥에 400여 개의 청사초롱을 달았다. 식탁과 무대 주변에는 십장생도(十長生圖)에 나오는 동물인 거북, 사슴, 학 모양으로 만든 20여 개의 대형 한지등(韓紙燈)을 설치했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참석자들에게 “십장생도에 나오는 동물들이 장수하는 것처럼 G20 회의도 1000년 이상 지속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티머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은 “안압지가 1000년의 역사를 지닌 곳”이란 김 총재의 설명을 듣고 “정말이냐”며 깜짝 놀란 표정을 짓기도 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오늘(22일) 회의에서 우리의 확고한 정책 공조 의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며 “내일(23일) 회의에서도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고 이를 토대로 서울 정상회의가 성공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캐나다 중앙은행의 존 머리 부총재도 “시작이 좋다. 잘될 것이다(Good start. It will be good)”라고 말했다.
이날 만찬장 자리 배치는 환율전쟁 해법 찾기에 주안점을 뒀다. 우선 대형 원탁 테이블에 모두 둘러앉는 기존 방식 대신 8인용 원탁 테이블을 7개 배치했다. 참석자들이 소규모 그룹으로 편안하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정부는 헤드 테이블에 의장인 윤 장관을 중심으로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 조지 오즈번 영국 재무장관, 짐 플래어티 캐나다 재무장관, 크리스틴 라가르드 프랑스 재무장관, 셰쉬런 중국 재정부장을 배정해 주요국들 간의 의견 조율을 유도했다. 특히 환율 문제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 중인 가이트너 장관과 셰 부장 사이에 여성인 라가르드 장관을 배정해 미중 간 가교 역할을 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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